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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GS칼텍스 여수공장의 비극, '예고된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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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GS칼텍스 여수공장의 비극, '예고된 참사'였다

산업부 오소영 기자.
산업부 오소영 기자.
[글로벌이코노믹 오소영 기자] 소설가 박민규는 책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사고’와 ‘사건’을 구분한다. 사고는 우연에 의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일인 반면 사건은 의도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령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였으나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으면서 ‘사건’으로 변화한다. 박민규 작가의 비유에 비춰볼 때 어제 발생한 GS칼텍스의 화재는 사고였을까? 아니면 사건이었을까?

먼저 사고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GS칼텍스는 어떤 정유 기업보다 안전 경영을 중시해왔다. 사내에는 사고를 예방하고 대응할 CEO 직속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있고, 여수 공장에는 안전 전문요원 90여 명이 배치됐다. 소방대응 훈련은 매년 50회 이상, 화재·폭발 비상 대응 출동 훈련은 10회 이상 실시된다. 이쯤되면 잇따른 화재는 완벽한 사고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발생한 단순 ‘사고’쯤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GS칼텍스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면 이번 화재를 단순 사고로 치부하기 힘들다.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친 기름 유출 사고, 트럭 운전사가 진흙 포대에 깔려 숨진 인명 사고 등 그간 사고에 대응하는 회사의 태도는 은폐와 침묵, 남 탓의 연속이었다.

지난 2014년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GS칼텍스는 기름 유출량을 축소 발표했다. 여수 해경이 발표한 유출량은 사고 당시 GS칼텍스가 발표한 800ℓ보다 900배가량 많았다. GS칼텍스는 이후 유출량을 2㎘로 정정했으나 이마저도 해경의 수사 결과와 수백 배 차이가 났다.

지난해 트럭운전사가 진흙포대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남 탓하기 바빴다. 당시 트럭운전사는 여수 공장 내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진흙포대를 옮기던 중 포대에 깔려 병원에 옮겨진 지 3시간 만에 사망했다. 이는 직원의 손가락이 절단된 사고 후 두 달여 만에 발생한 인명사고였으나 회사는 지게차 기사의 과실치사이며 협력사에 책임이 있다고 해명했다. 2014년 기름 유출 사고 직후에도 GS칼텍스는 선박의 ‘과속운항’ 탓이라며 사고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억울해했다.

남 탓이나 은폐가 어려울 때 회사는 침묵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2일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GS칼텍스는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사고로 불안에 떨었을 여수 주민들에 대한 사과나 재발 방지책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침묵과 은폐, 남 탓으로 일관했던 그간의 대응을 볼 때 이번 화재는 이미 예고된 ‘사건’이다. 사고를 컨트롤하는 자리인 최고안전책임자(CSO)에 안전 전문가가 아닌 대외협력실장을 임명한 이유가 사고가 터졌을 때 책임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이번 사건으로 허진수 회장의 안전경영 원칙은 힘을 잃었다. 연이은 사고에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여수공장이 아니라 GS칼텍스 내부를 수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여수 주민들의 불안 역시 커지고 있다.
‘안전한 공장 행복한 우리가족’ GS칼텍스 여수 공장에 쓰여 있는 문구다. 만약 GS칼텍스가 안전한 공장을 사고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공장이라고 해석했다면 이는 오판이다. 안전한 공장의 숨은 뜻은 사고 후 지역 주민과 투명하게 소통하고, 올바른 예방책을 마련하자는 데 있다. 여수 공장이 '화약고'란 오명을 벗으려면 회피와 침묵보단 사과와 예방책 마련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오소영 기자 o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