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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학계 논란 불러일으킨 전곡리 아슐리안 석기 손도끼 발견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56)]

기사입력 : 2017-09-1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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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전곡선사박물관

어떻게 전곡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었을까. 1978년 주한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한탄강을 여행하게 되었다. 강변을 거닐던 병사의 눈에 특이한 돌이 눈에 띄었다. 일반인이라면 무심히 넘겼겠지만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강변의 수없이 많은 돌들 중에서 독특한 모양의 돌멩이에 주목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돌을 찍은 사진과 발견하게 된 경위를 적은 편지를 프랑스의 유명 고고학자 보르드 교수에게 보냈다. 보르드 교수는 그것이 아슐리안문화의 석기임을 확인해주었다.

아슐리안문화는 유럽 일대에서 발견되는 주먹도끼문화를 말한다. 이후 대대적인 지표조사와 함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전곡리 유적은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 발견은 당시 고고학 학계를 완전히 뒤엎는 대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아슐리안형 뗀석기(흔히 양면핵석기라 부른다)가 발견되지 않아 대표적으로 모비우스(Movius) 같은 학자들의 '구석기 문화 이원론'이 주장되고 있었다.

이는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상의 선으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지역과 발견되지 않는 지역을 나누어, 인류의 이동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는 이론으로 한동안은 인도 동부에서부터 이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인류의 동아시아 진출이 (이 석기를 이미 가지고 들어간) 유럽보다 늦게 이뤄지지 않았나 추정했다. 그런데 전기 구석기의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아슐리안 석기 발견으로 정설로 인정받았던 모비우스 학설이 한순간에 부정되어 버린 것.

이 일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데즈먼드 클라크 같은 세계적인 학자들까지 한국에 와서 석기들을 감정하고 진품임을 인정했다. 특히 옛날부터 한국에는 구석기 시대 유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일본은 이 사건으로 열폭해 버린다. 특히 식민 지배하던 1930년대 함경북도 종성군 동관진에서 동물 뼈와 석기 등 후기 구석기 유적을 발견했으나 무시하던 사건 등도 아슐리안식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이렇게 열등감에 빠진 일본은 한국에 역사적으로 뒤처질리 없다며 자기들도 있을 것이라며 열폭하다가, 결국 몇 년 안가 후지무라 신이치의 1981년 석기 유물 조작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써 일본은 세계적으로 개망신 당하는 것은 물론, 일본의 고대 석기 시대 연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슐리안형 석기보다 이전의 원시적인 석기를 올도완(Oldowan) 석기라고 부르는데 아프리카에서 260만년 전부터 발견된다. 그런데 아프리카로 부터 호모 에렉투스가 약 190만년 전쯤 아프리카를 나와서 아시아 쪽으로 진출했는데 이때 조악한 올도완 석기기술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 이후 160만년 전쯤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고인류가 보다 발전된 방식의 석기를 만드는데 이를 아슐리안형 석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중국 및 인도네시아의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 유적에서는 당연히 올도완 석기만이 발견된다. 위에 나온 모비우스 라인은 이런 증거를 잘 설명하는 이론으로 오랫동안 고인류학자들에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슐리안 석기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석기와 상당히 닮은 손도끼가 발견되어 학계의 논란이 된 것이다.

이 유적이 30만년 전의 것이라면 새로운 호모 에렉투스가 아슐리안 석기 기술을 가지고 아프리카로부터 아시아의 끝까지 왔다는 얘기이거나, 최소한 아슐리안 기술이 그 먼 거리의 고인류 사이에 전파되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지나간 자리에 다른 아슐리안석기 유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전곡리 유적 발견 당시에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그런 증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설이 나왔다. 만약 이 유적이 4만년 전의 것이라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유골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의 지질학적 상황으로만 연대를 추정해야 하기 때문에 둘 중 어떤 것이 맞다고 정확하게 말하기 힘든 점이 있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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