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딸을 기다리는 마음

기사입력 : 2017-09-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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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가을비가 지나간 자리에서 나뭇잎들의 몸이 옅어졌다. 다녀갈 때마다 나뭇잎들의 생기를 돋우던 봄비와는 다른 가을비의 작용이다. 가을볕과 가을비가 곡식들의 마지막 낱알까지 통통하게 익혀 바지런히 수확을 끝내고 나면 며느리들은 간만의 친정나들이를 떠나곤 했다. 가을비를 바라보는 며느리들의 눈에 친정에 대한 그리움은 날마다 새록새록 짙어졌을 것이다.

가을비 내리는 출근길에 친정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며느리들을 떠올릴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임을 안다. 저마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하고 먹고 사는 일로 몸과 마음이 고단할진대 흘러간 시절의 며느리들의 소회 따위가 빗속을 뚫고 마음을 파고들 리 없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게 빗물을 타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스마트폰 속에서 폭우에 잠긴 부산의 도로는 허리케인이 강타해 쑥대밭이 된 플로리다의 거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신문에서 TV로, TV에서 인터넷과 팟캐스트로 우리나라 뉴스미디어의 지형은 이동해 왔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날마다 뉴스가 쏟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의 눈과 귀를 피해서는 안 되는 뉴스들을 전통 미디어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뉴스 생산자들의 뉴스에 대한 외면의 결과는 자연스럽게 전통 미디어들에 대한 독자와 시청자들의 외면을 낳았다. 권력자들의 살벌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겸손함에 기인했든 광고주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추기 위한 인내심에 기인했든 전통 미디어들의 외면은 결국 시민들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언론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었다. 그 무시와 포기의 대가로 그들의 상부가 호의호식하는 동안 시민들은 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별명을 선사했고 전통 미디어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사라져서는 안 되는 뉴스들을 붙잡고 파고든 새로운 미디어들에게 시민들은 열광했고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전통 미디어들이 다시 시대의 흐름 안으로 들어와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주기를 응원하고 있다. 언론 적폐 청산과 언론 독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언론 장악의 프레임에 가두려고 애쓰는 세력의 분투는 그래서 다만 처절한 실패를 예고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시대의 시민들은 구태의연한 미디어들을 더 이상 메시지로 수용하지 않는다. 핫과 쿨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네오 뉴스미디어를 생산한다. 새로운 뉴스 생산자들에게 미디어가 인간 정신과 육체의 확장이든 인간이 미디어의 확장이든, 이론적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 더 이상 메시지와 마사지가 되지 못하는 올드 미디어를 거부하고, 온갖 시뮬라르크가 혼재한 하이퍼리얼리티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스스로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만들어 간다. 그 통로는 공간과 시간의 한계가 명확한 기존의 미디어 종사자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뚫린다. 그래서 오늘날의 미디어는 패시지(passage)다. 누군가의 개입으로 흐름이 막힐 수 있는 미디어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가짜 진실들을 구성하는 미디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흐름이 막힌 물은 사방을 향해 나아가다가 반드시 하나의 틈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 틈에서 통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진실은 물과 같아서 일단 길이 난 통로를 향해 쏟아져 들어와 엄청난 위력으로 벽들을 허물어뜨린다. 인간의 불완전성은 언제나 세계의 불안정성을 야기한다. 거짓과 위선, 통제와 억압에도 늘 빈틈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직 진실로만 뚫고 갈 수 있는 틈새를 향해 함께 흐르는 것이 전통 뉴스미디어들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다시 원래의 통로로 당당히 흐르는 메시지를 원한다.

오래 전 들판에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시집 간 딸을 그리워하던 친정 부모들처럼, 반갑게 돌아올 지상파방송 뉴스들을 기다린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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