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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겜문학] ‘리니지M’ 그거 왜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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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겜문학] ‘리니지M’ 그거 왜 하나요

- 리니지란 텍스트와 콘텍스트 변화에 따른 리니지M의 탄생

그래픽:노혜림 디자이너이미지 확대보기
그래픽:노혜림 디자이너
[글로벌이코노믹 신진섭 기자] ‘아재게임’, ‘초과금게임’, ‘고인물게임’.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은 참 말 많은 게임이다. 많은 이들은 리니지M의 성공을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출시된 지 20년 가까이 된 게임의 모바일 버전이 일매출 60억원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데 말이다. 혹자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게임을 옮긴 것이니 ‘땅짚고 헤엄치기’라는 말로 시샘어린 시선을 대변하기도 한다.

리니지M의 성공을 말하려면 우선 리니지가 왜 재밌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리니지의 전투시스템과 그래픽은 단출하다. 성장이란 터무니없이 긴 반복 사냥과 마우스클릭을 의미한다. 최근에 리니지를 접하는 사람들은 ‘허접’해 보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리니지에 대한 몰이해서 나오는 표현이다. 리니지의 재미는 사냥도, 득템도 아닌 권력과 명예획득에 있기 때문이다.
리니지에서 성을 먹은 일명 '성혈'이 된다는 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약속한다.
리니지에서 성을 먹은 일명 '성혈'이 된다는 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약속한다.

리니지 유저의 목적은 좋은 혈맹에 들어가 더 큰 권력을 차지하고 게임 내에 명성을 얻는 데 있다. 게임 내에서 성을 차지하면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저마다 큰 혈맹과 혈맹이 모인 '라인'을 구축해 전쟁에 나선다. 혈맹원들은 부와 명예를 위해 군주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군주는 혈맹원들에서 부군주와 정예 기사, 수호 기사, 돌격 대장 등의 지위를 내려 결속을 강화한다. 리니지에서 강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여느 게임과 비교할 없을만큼 높다. 끝없이 높이 올라가려는 욕망이야말로 리니지를 움직이는 핵이다.

강자의 폭정에 약자들의 규합한다. 강자를 제압한 약자 중 일부는 강자로 변모하고 이들은 언젠가 또 다른 약자가 일으킬 혁명에 스러질 운명이다. 유저가 만들어가는 열린 게임성이야말로 리니지의 강점이다.
강자의 폭정에 약자들의 규합한다. 강자를 제압한 약자 중 일부는 강자로 변모하고 이들은 언젠가 또 다른 약자가 일으킬 혁명에 스러질 운명이다. 유저가 만들어가는 열린 게임성이야말로 리니지의 강점이다.

강자의 집권이 오래가면 좋은 사냥터를 통제하는 ‘통제’ 등 폭정이 나오기 마련이고 이에 대항해 소규모 혈맹들이 연합해 일명 ‘반왕’ 세력을 구축해 혁명에 나선다. 혁명에 성공하면 그 순간 반왕은 다시 기득권으로 변모하고 누군가는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린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는 권력투쟁과 인정투쟁이 반복된다. 이런 면에서 리니지는 웬만한 VR(가상현실) 게임보다 현실에 근접해 있는 게임이다. 리니지는 그 자체로 완결된 게임이 아니다. 유저가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게임이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 실존주의 이후의 프랑스 사상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사진= 민음사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표지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 실존주의 이후의 프랑스 사상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사진= 민음사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표지

인문학에서 말과 이미지, 규칙, 소리 등을 재현한 것을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작품(work)과 텍스트의 차이를 ‘체험’에 두었다. 공간을 덩그러니 차지하는 독립적인 성격의 작품과는 달리 누군가가 개입하여 완성하는 것이 텍스트다. 그에 따르면 세상의 어떤 텍스트도 자기 완결적인 형태로 존재할 순 없다. 이런 면에서 리니지는 게임을 넘어 하나의 탐독 가능한 텍스트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몬스터, 아이템, 프로그래밍 코드 등 다양한 규칙 등이 게임을 구성하지만 이를 하나의 완성된 게임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유저들의 승리를 향한 강한 갈망이기 때문이다. 리니지 유저는 그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 창출자다.

리니지M은 텍스트가 받아들여지는 조건인 문맥, ‘콘텍스트(Context)’에 대한 고민 끝에 나왔다. 리니지란 텍스트를 소비해야 할 주 유저들은 생활에 쫓기는 직장인으로 ‘레벨업’했으며 이들이 게임에 투자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리니지란 가상세계를 감당하기에는 그들의 생활이 너무 부대꼈던 것이다. 이용자수의 감소는 곧 텍스트의 질적 저하로 이어진다. 리니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의 양과 질은 게임의 재미와 직결된다. 쉽게 말하면 리니지는 점점 더 재미없는 게임이 돼 가고 있었다.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리니지랑 리니지M이 똑같아요.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리니지랑 리니지M이 똑같아요.
‘콘텍스트’의 변화에 맞춰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를 모바일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자동사냥’, ‘자동스킬’ 등 바쁜 ‘아재’들의 입맛에 맞는 UI(유저 인터페이스)를 달고서. 리니지M 유저들은 결코 신규 유저가 아니다. 생업에 쫓겨 잠시 리니지 세계를 떠난 복귀 유저에 가깝다. 리니지M이 출시 전 광고에서 ‘반왕’, ‘통제’ 등 기존 리니지 유저들만 알 수 있는 용어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다시 당신의 이야기를 써 달라”는 추억 마케팅이었다. 유저들은 마음한편으로 리니지 복귀를 바라고 있었고 엔씨소프트는 게임의 콘택스트를 조금 비틀어서 수용자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보고 있노라면 O.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난다. 저 잎새가 다 떨어지면 유저들은 의미 없는 존재가 되니까. 경험치와 아이템 획득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타 게임의 '피로도'와도 성격이 다르다.이미지 확대보기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보고 있노라면 O.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난다. 저 잎새가 다 떨어지면 유저들은 의미 없는 존재가 되니까. 경험치와 아이템 획득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타 게임의 '피로도'와도 성격이 다르다.

우려스러운 것은 리니지M의 필수 ‘버프(능력을 올려주는 일종의 아이템)’ 아인하사드의 축복이다. 리니지M을 즐기려면 일정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인데 정액제였던 리니지보다 그 요구액이 높아 많은 유저들이 분노하고 있다. 현재 리니지M 유저들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슬픔의 5단계’를 지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순이다. 유저들은 기다리던 리니지M이 이런 게임일리 없다며 ‘부정’하다 엔씨소프트의 과금 정책에 ‘분노’했다. 일부 유저들은 적당히 과금하면 된다며 ‘타협’했고 또 일부는 이 게임을 계속해야 하나 ‘우울’해 하고 있다. 슬픔의 5단계는 애도의 5단계라고도 불린다. 마지막 단계인 수용이란 유저들이 게임을 떠난다는 뜻이다.

형 우리 이번엔 성 먹을 수 있겠지? 얌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부푼 꿈을 안고 리니지M을 설치했던 많은 유저들이 '아인하사드의 축복' 때문에 떠나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맘 속에 그리던 리니지와 리니지M의 간극은 작지 않았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형 우리 이번엔 성 먹을 수 있겠지?" "얌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부푼 꿈을 안고 리니지M을 설치했던 많은 유저들이 '아인하사드의 축복' 때문에 떠나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맘 속에 그리던 리니지와 리니지M의 간극은 작지 않았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꽁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정지용은 그의 시 ‘고향’에서 달라진 고향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리니지라는 텍스트에 열광했던 유저들이 돌아왔지만 정작 기대했던 그 리니지가 아니라면 결국 언젠가는 그 땅은 황폐화 될 것이다. 유저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건 애정이 있다는 방증이다. 리니지란 서사시를 지속하기 위해 엔씨소프트와 유저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길 바란다. 현재의 고고(高尙)한 위상이 고고(孤苦)한 처지로 변하기 전에…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