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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가을꽃 국화 앞에서…국가기관의 언어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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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가을꽃 국화 앞에서…국가기관의 언어지배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다시 가을의 끝에 선다. 서리가 내린다는 절기 ‘상강(霜降)’을 지나 겨울의 문턱을 향해 걸어가는 단풍의 뒷모습은 사라져가는 모든 것 저마다의 일생처럼 화려해서 쓸쓸하다. 생명은 피어서 아름답고 지어서 아련하다. 낙엽들이 쌓여 가면 한동안 허전해질 하늘을 국화꽃 향기가 채울 것이다. 국화꽃은 그렇게 떠나는 자와 남은 자 모두를 위로한다.

서리에 국화꽃마저 지고 나면 꽃송이를 닮은 함박눈이 이따금 찾아와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눈이 쉬는 날이면 훌쩍 넓어진 공간으로 바람이 혹독한 겨울을 거침없이 풀어놓을 것이다. 물질로 화려하게 세상을 장식했던 자연은 다시 그 물질을 거두어 죽이고 있다. 죽어야 사는 이치를 가르치는 계절의 앞에 또다시 선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신어(新語)사전 편찬을 담당하는 사임은 윈스턴에게 말한다.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줄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思想罪)'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왜냐하면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계속될 거야. 한 해 한 해 어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식의 한계도 좁아지겠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오래된 철학적 명제는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의 철학으로 실천된다. 사전에서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등의 어휘를 제거하면 그 어휘들이 조장했던 의식이 차츰 소멸하여 결국 부자유와 불평등을 강요하는 독재정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뿌리마저 거세될 거라는 식이다. 병상에서 지병과 싸우며 우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렸던 작가의 상상력은 21세기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부에 의해 현실로 생생하게 구현되었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국가기관들을 활용해 저지른 일련의 일들은 언어의 지배를 통해 사고를 통제하려는 소설 속 오세아니아의 정책과 정확히 일치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포털과 커뮤니티 사이트들에 둥지를 틀고 그들의 하수인들이 벌인 ‘댓글’ 공작은 소설 속 사전 편찬과 다르지 않다. 그들 치하의 TV라는 매체는 소설 속 텔레스크린이었다. 그들의 의도가 조지 오웰이 상상했던 추상적 시점의 미래를 현재의 한국 사회에 구현하는 것이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고가 언어를 지배한다’는 또 다른 철학적 명제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독재자들이 오랫동안 허울 좋은 언어 아래에서 저질렀던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 세뇌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확장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했다.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자들의 사고체계가 가진 근원적 한계다.

정치보복을 운운하며 과거의 무지막지한 일들을 감추고 축소시키려는 자들의 언어는 국민들의 사고를 지배하려는 획책의 연장이다. 그들의 의도에 맞장구치며 어휘를 빚고 논리를 비약시키는 언론은 그들과 사고체계를 공유한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꿈꾸는 세계와 지향점이 같다. 다른 나라는 계속 우주선을 띄워 먼 우주로 보내든 말든 강줄기를 끊고 강바닥을 긁어내는데 혈세를 낭비했던 이유나 국민들이 실직하고 장사가 안돼 목숨을 끊든 말든 내부자들끼리 매관매직에 여념이 없었던 이유는 동일하다. 세뇌된 다수를 마음껏 지배하며 소유를 완전 독점하는 자신들만의 유토피아 국가, 그들의 설계도는 그것을 향해 있었다. 그 음습하고 어두운 세계로 이어진 문턱에서 밝혀졌던 촛불은 그래서 햇빛보다 찬란하게 현재를 비춘다.

가을나무에 매달려 있는 저 나뭇잎들처럼 가야할 자들은 가야한다. 부당하게 권력을 누리고 소유를 독차지했던 자들은 낙엽처럼 떨어져 철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적폐는 사람이 쌓는 것이다. 청산의 대상은 폐단이 아니라 폐단을 쌓은 사람들이다.

서리가 내렸으니 촛불처럼 노랗게 국화꽃이 필 것이다. 꽃말은 아깝지만 적폐들에게는 하얀 국화꽃을 건네고 싶다. 백국(白菊)의 꽃말은 ‘성실, 감사, 진실’이다. 그런 면에서, 다스는 누구겁니까?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