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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주는 도전적 삶…수묵 채색에 내면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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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주는 도전적 삶…수묵 채색에 내면 담아내

[예비한류스타(31)] 오순이(화가, 단국대 동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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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이 작 '내 마음의 풍경'
붉고 동그란 미소로 수수하게 피어/ 신선을 닮아가는 이 있어/ 길손이 궁금하여 물었다/ 그미의 이름을 물었더니/ ‘진실을 불러오는 사랑’이란다/ 야생에서 그리움을 몰아오는 이 있어/ 들과 산의 꽃들에게 물었다/ 비답을 물었더니/ 힘을 빼는 것이란다/ 추운 계절에 매화보다 일찍 피어/ 봄의 부활을 알리며/ 희망온도를 높이는 이는 도시의 신선일진데...

오순이(吳順伊, Oh Soon Yi)는 경상남도 마산 출신의 동양화가이다. 시험의 뜰에 내린 허스토리(Herstory)는 그녀에게 그림의 신탁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도토리 잎사귀가 흔들리고 알밤이 툭 떨어지는 소리, 새들이 지친 몸을 쉬어가는 숲, 햇살 좋은 한적한 마을은 분주한 일상을 위로하는 모습들이다. 그녀의 그림은 초록 향연보다는 갈색에서 위안을 주는 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양화 입문


스승들 가르침 받으며 화풍 구축


중국서 '형호의 필법기'로 박사학위

바실리 칸딘스키의 발상의 전환은 오순이에게도 통한다. 바른 편과 왼편, 손대신 발로 그림을 그리고, 위와 아래에 대한 생각들이 열려 있다. 전통의 뜰 한 켠에 자리 잡은 자유분방한 그림들은 갈퀴세운 말들의 질주를 떠올리지만 분주한 의식 뒤에 맞이하는 정갈한 밥상 같다. 미묘한 움직임에 대한 탐지, 과감한 결단 끝에 정제된 섬세한 여성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

아홉 살에 입학한 마산 중앙초등학교, 순이는 밝고 사교적이고 활기차게 학업을 하면서 그림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4학년(1978년)때 TV를 통해 발로 그림을 그리는 순이의 모습을 접한 선한 마음의 독지가가 후원을 약속했다. 이후 순이는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리며 미더운 유머감각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정진하여 주목받는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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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이 작 '내 마음의 풍경'

초등학교 5학년 때, 순이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간파한 미술 선생님의 제안으로 동양화에 입문한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문인화 스승 목원 김구의 사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림 학습시대를 거쳤다.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신의 그림세계를 구축한 그녀는 일관되게 수묵으로 아기자기한 정감이 묻어나는 아담한 내면의 산수풍경을 그리고 있다.

순이는 마산 제일여중고 시절 전국남녀고교 미술실기대회 사군자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86년에 단국대 동양화과에 입학하여 피나는 노력 끝에 학과를 수석졸업 했다. 이후 대만 중화미술원에서 2년간 공부한 뒤, 중국 본토로 넘어가 한국인 최초로 중국 최고 수준의 항저우(杭州) 중국미술학원 국화계 산수화과에 입학했다. 그녀에게 좌절이라는 단어는 사치였다.

놀라운 인간승리의 기록, 그녀는 11년간의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2004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은 남종화의 대가 형호(形浩)의 화론(畵論)을 다룬 ‘형호의 필법기(筆法記) 연구’로써 예술창작이론과 실기를 아우르는 중국 최초의 한국인 유학생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예상을 뒤집고 그녀는 존중받는 단국대 동양화과 교수가 되었다.

오순이는 기교보다는 화가의 내면이 그림 속에 얼마나 잘 표현되었는가를 중시한다. 행운목 같은 그녀는 늘 새로운 기록을 달고 산다. 그림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제5회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 대상 수상자가 되게 했다. 그녀의 푸른 희망은 우리의 희망이 되어 우리를 꿈틀거리게 만든다. 크리스티 브라운의 삶을 영화화한 짐 쉐리단 감독의 <나의 왼발>이 오버랩 된다.

후학들에게 내면과 작품 일치 강조


그림 구성요소 유기적 관계 집중


자연과 소통하는 자존의 경지 담아


그림을 대하는 한없는 사랑과 경외심, 그림에 자체에 대한 강한 친밀감의 결과이다. 그녀는 천안에 둥지를 틀고 ‘내 마음에 이는 바람’과 조화를 이루며 가벼운 파(波)가 몰고 오는 결(潔)의 리듬감을 화두로 두고 있다. 그녀가 써 내는 가을편지는 정지용의 ‘향수’를 추상으로 엮은 동화적인 분위기로 짜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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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이 작 '내 마음의 풍경'

초등학교 특별활동 미술반에서 출발하여 내공을 연마한 뒤, 박사와 교수가 된 오순이 화백은 2007년 인사아트센터 전시를 시작으로 서울, 타이베이, LA, 해인사, 오레곤 대학교,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2008년 타이완 대만국립 국부기념관, 2010년 공화랑, 2016년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의 ‘내 마음의 풍경’展 까지 11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단체전을 가졌다.

마태복음 5장 16절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춰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작업을 하는 오순이 화백은 후학들에게 작가의 내면과 작품을 일치시키는 데 중점을 둘 것을 강조한다. 오순이 화백은 ‘내 마음의 풍경’展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산수풍경의 구성 요소들의 유기적 관계에 집중한다. 실물 산수풍경이 아닌 작가가 보고자하고 잊고 있었던 스키마적 풍경을 찾아간다.

감동을 주는 도전적인 삶, 그윽한 묵향 속에 235㎜의 발끝에서 탄생되는 ‘생의 찬가’는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눈물로 쌓아올린 탑, 그녀의 그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깊은 성찰로 도포된 경전 같은 엄숙함, 지친 몸이 쉬어가고 싶은 고향처럼 절제된 정겨움, 사라져 가는 순수성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가 있다.

오순이 단국대 동양학과 교수
오순이 단국대 동양학과 교수

뉴욕전시회를 앞두고 있는 오순이 화백은 지금까지의 작업을 결산한 전시회로 ‘내 마음의 풍경’展을 꼽는다. ‘내 마음의 풍경’이란 커다란 주제는 전시작들의 공동 제목이다. 그녀의 자연에 대한 성찰은 신의 응시와 보통사람들의 온기를 가슴으로 느끼며 그림을 대하는 그윽한 수묵의 존중에 이른다. 수묵에서 번진 채색은 의지의 색깔로 도도한 자존의 경지를 견지한다.

그녀는 마음의 눈을 열고 세상이 자연과 소통하는 경건한 방식, 작은 행복으로 가는 즐거운 의식은 새들의 재잘거림 같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그녀의 그림들은 그녀의 심상(心象)이다. 가을의 영혼을 마주했던 빨간 지붕의 집, 사람 사이의 겹을 허물고 나무들이 정령이 되어 지키는 마을, 그런 마을이 그녀의 그림에는 존재한다.

오순이, 그녀는 장애인이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선천적으로 선한 심성을 지니고 있으며 성실하게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녀의 그림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 그녀가 한류스타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녀의 화(畵)작업이 국제적 인지도를 더욱 높여가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예술평론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