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총리는 최근 기자들에게 “원화 강세 속도가 조금 과도한 감이 있어 아주 면밀하게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수출의 가격경쟁력 하락까지 이야기하기는 그렇다”면서도 “일단 지금 보기에 원화 강세 속도가 다소 과도하다고 느끼고 있어 시장을 면밀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은 다른 금융상품과 달라 당국자의 말에 매우 민감하다. 외환거래에 관한 통계는 정부가 가장 먼저 입수하도록 되어 있다. 구체적인 통계는 정부만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래량에 있어서도 정부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런 만큼 시장은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가 섣부른 발언으로 속내를 들키게 되면 투기꾼들은 한쪽 방향으로 투기를 하게 된다. 그 결과는 시장 왜곡 또는 시장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당국자의 발언은 또 정부가 시장을 조작하고 있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실제로 외환 당국자의 발언이 빌미가 되어 국가 간 환율분쟁이 야기된 사례도 없지 않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세계 각국은 외환에 관한 한 최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선진국 정부일수록 환율에 관한 코멘트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외환시장을 안정화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시세의 안정은 물론이고 대외 지금수단으로써 적정 외환 보유액을 유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개입은 어디까지나 위기 상황에서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기준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6개월이 지나가지만 그동안 정부는 환율을 시장에 맡겨왔다. 정부 당국자가 구두 개입을 하고 나선 것은 지난 주말 김동연 부총리가 처음이다.
부총리의 구두 개입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최근 우리나라 원화의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온 점을 감안할 때 적당한 타이밍에 적적하게 처신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는 가하면 부총리가 나서 구두 개입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신중론도 없지 않다.
이런 마당에 아주 민감한 환율에 대해 부총리가 직접 구두 개입을 하고 나섬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최근 우리나라 환율이 떨어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개인소비 물가지수(PCE) 하락으로 금리인상 속도가 조금씩 늦춰지고 있다.
여기에 영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인덱스가 하락하고 있다. 달러의 약세는 곧 원화의 강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시장의 요인이 원화환율 하락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도 환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 9월 중 경상흑자가 122억달러에 이르렀다. 역대 최대 규모다. 경상수지 흑자로 늘어난 달러 유동성은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를 높이게 된다.
환율의 급속한 하락은 물론 수출 가격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국제시장에서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국내적으로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커지고 또 외국인들의 주식투자 자금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환율도 그러한 시장 추세에 동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들어 환율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박근혜 정부가 초이노믹스라는 명분 아래 통화량을 크게 늘리기 시작하던 2014년 이전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의 환율이 여전히 높다는 시각도 있다.
적정 환율이 얼마이냐에 대해서는 바라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구두 개입이 불필요한 통상마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어 시장 왜곡이 야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잦은 개입은 뉴욕증시 등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큰 정부도 좋지만 시장은 여전히 중요하다
김대호 경제학박사 대기자 yoonsk82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