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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실리콘밸리 해부] ① SV 8인의 배신자들…반도체 천재들의 노벨상 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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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실리콘밸리 해부] ① SV 8인의 배신자들…반도체 천재들의 노벨상 암투

페어차일드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무어의 법칙 쇼클리 박사 이야기

기획시리즈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리콘밸리는 IT 혁명으로 세계경제를 획기적으로 일으킨 곳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로 부상하려는 한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벽이자 배워야 할 스승이기도 하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우리나라의 혁신성장을 앞당기기위해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기획시리즈로 연재한다. 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 MBN 한경와우 TV 등에서  워싱턴특파원 해설위원 보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 대학원 미국 미주리 주립대 중국 인민대 등에서 교수로 연구및 강의을 해왔다. 02-323-7474 이미지 확대보기
기획시리즈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리콘밸리는 IT 혁명으로 세계경제를 획기적으로 일으킨 곳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로 부상하려는 한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벽이자 배워야 할 스승이기도 하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우리나라의 혁신성장을 앞당기기위해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기획시리즈로 연재한다. 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 MBN 한경와우 TV 등에서 워싱턴특파원 해설위원 보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 대학원 미국 미주리 주립대 중국 인민대 등에서 교수로 연구및 강의을 해왔다. 02-323-7474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대기자/경제학 박사] 요즈음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꺼져가던 세계경제를 반도체가 다시 살려내고 있는 형국이다.

반도체의 역사는 쇼클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만든 초기의 영웅 중에 쇼클리라는 인물이 있다.

영문 풀 네임은 Willam Bradford Shockley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천재다.

쇼클리의 개발한 트랜지스터 기술이 오늘날 컴퓨터의 출발점이다.

쇼클리는 191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양부모가 모두 광산기술자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머니는 스탠퍼드대 출신의 유명한 광산 측량사였다. 신대륙의 광산개발에 관심을 두어 눈을 떠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그 바람에 쇼클리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칼텍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공대 학부를 졸업하고 1936년 MIT에서 26살의 나이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은 ‘염화나트륨 결정체에서의 전자파동 함수의 계산’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데이비슨 박사의 천거를 받아 당대 최고의 기술수준으로 명성을 날리던 벨 연구소에 입사했다. 여기서 수준 높은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2차대전 중에는 군사기술 연구에 깊숙하게 개입했다. 레이더와 잠수함요격 기뢰를 효율적으로 발사하는 방법 등을 연구했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기술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미국에서는 진공관 대체 기술연구가 붐을 이루었다. 전자기기의 핵심부품이었던 진공관은 너무 부피가 크고 수명도 짧아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특히 전자제품 소형화를 추진했던 당시 미국 산업계는 진공관 대체 소재 개발에 목을 걸고 있었다.
벨 연구소도 연구팀을 발족했다. 그 팀장이 쇼클리였다. 쇼클리는 평소부터 반도체로 진공관 이상의 증폭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입증을 해내지는 못했지만 가설은 발표한 상태였다.

쇼클리 연구팀에서 함께 근무하던 바딘과 브래턴이라는 두 명의 과학자가 쇼클리의 가설에 입각하여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47년 2월 반도체로 진공관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트랜지스터다. 이 트랜지스터는 점 접촉방식으로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쇼클리는 이를 개선하여 오늘날과 같은 접합형 트랜지스터를 만들어냈다. 그때가 1951년이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치다보니 트랜지스터 개발자가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구와 개발에 관여한 3명의 천재들은 반목하게 된다. 서로 트랜지스터의 원조라고 우기면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노벨상위원회도 공적을 가리지 못한 채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했다.
실리콘 밸리는  숱한 기술자과 과학자 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실리콘 밸리 8인의 배신자 스토리를 낳은 쇼클리와  고든 무어 등의 공로가 크다. 김대호 박사의 실리콘 밸리 이야기 8명의 배신자 편이다.  그림은 인텔 창업주 고든 무어가 만든 무어의 법칙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실리콘 밸리는 숱한 기술자과 과학자 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실리콘 밸리 8인의 배신자 스토리를 낳은 쇼클리와 고든 무어 등의 공로가 크다. 김대호 박사의 실리콘 밸리 이야기 8명의 배신자 편이다. 그림은 인텔 창업주 고든 무어가 만든 무어의 법칙을 형상화 한 것이다.


결국 쇼클리는 벨연구소를 떠났다. 그후 195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쇼클리 반도체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에서는 트랜지스터의 열풍을 타고 내로라하는 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인텔을 설립한 고든 무어가 한 명이었다. 그는 고든 무어는 특히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하다. 무어의 법칙이란 '컴퓨터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1965년 일렉트로닉스 매거진 투고한 논문에서 주장한 것이다. 인텔은 이러한 무어의 법칙에 맞춰 반도체의 정밀도를 1년 6개월 또는 2년에 2배씩 향상시켜왔다

무어는 192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1950년 미국의 주립 명문 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이후 칼텍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대학원에서 화학 및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칼텍의 선배였던 쇼클리 박사의 연구소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평생친구이자 사업파트너 로버트 노이스를 만났다.

쇼클리는 수 많은 업적을 세운 과학자였다. 한 가지 단점은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것. 쇼클리의 독선적 연구소 운영이 종종 문제가 됐다. 대인관계는 영 엉망이었다.

그러던 중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를 비롯한 8명의 연구원이 쇼클리에 반기를 들었다. 쇼클리에 불만을 품고 한꺼번에 사퇴를 했다.그리고는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때가 1957년이다.

쇼클리는 이들 8명을 후계자로 키워왔다. 자신 만의 은밀한 기술과 노하우도 이들에게는 모두 전수해 주었다. 그런 인재들이 한꺼번에 이적하자 쇼클리는 분노했다. 이들을 향해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배신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8인의 배신자’라는 말은 바로 이때 만들어졌다.

이 8인의 배신자들이 이룬 최대의 업적은 반도체 소재로 실리콘을 새로 개발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게르마늄을 사용했으나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 8인의 배신자 들이 실리콘 반도체를 만들어 내면서 실리콘 밸리의 신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후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일취월장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함께 세계 반도체 시장 양대 산맥으로 떠올랐다.

1960년대 들어 8인의 배신자들은 페어차일드에도 만족하지 않고 모두 창업의 길에 나섰다. 컴퓨터 대중화 바람은 이 8인의 배신자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클리입장에서는 배신의 고통이 적지 않았겠지만 이들이 흩어짐으로써 컴퓨터산업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줄리어스 블랭크, 빅터 그리니치, 제이 라스트, 고든 무어, 유진 클라이너, 로버트 노이스, 셀던 로버츠 그리고 진 호에니 등이 그 주역이다.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만드는 데에는 인텔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 MBN 한경와우TV SBS-CNBC 글로벌이코노믹 등에서 워싱턴특파원 경제부장 금융부장 국제부장 해설위원 보도본부장 주필 등을 역임했다.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 대학원 미국 미주리주립대 중국인민대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연락처 02-323-7474 이미지 확대보기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만드는 데에는 인텔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김대호 박사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매일경제 MBN 한경와우TV SBS-CNBC 글로벌이코노믹 등에서 워싱턴특파원 경제부장 금융부장 국제부장 해설위원 보도본부장 주필 등을 역임했다. 또 고려대 경영대와 MOT 대학원 미국 미주리주립대 중국인민대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연락처 02-323-7474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페어차인드 반도체를 퇴사한 것은 은 1968년 7월 18일이다, 이들은 가칭 NM 일렉트로닉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훗날 그 이름을 '인텔(Intel)'로 바꾼다. 'Integrated Electronics'의 약자였다.

무어와 노이스는 인텔 설립 1개월 만에 첫 번째 종업원으로 앤디 그로브를 채용한다. 이 글로버는 무어와 노이스와 함께 인텔을 일으킨 3대 창업주로 추앙받고 있다.

인텔은 설립 초기에는 SRAM이나 DRAM과 같은 저장용 반도체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1971년 이른바 '4004'를 발표하면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중심의 업체로 변신했다. 인텔 4004는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칩으로 만든 세계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이다. 오늘날 CPU는 여기서부터 츨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대호 대기자/경제학박사 yoonsk82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