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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달맞이꽃은 왜 밤에 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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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달맞이꽃은 왜 밤에 피는가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모든 생명은 일양일음(一陽一陰)의 숙명을 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빛은 어둠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복수초나 노루귀꽃, 변산바람꽃 같은 봄꽃들이 잔설이 녹기도 전에 찬바람 속에 꽃을 피우는 것은 다른 나무들이 잎을 피우기 전에 서둘러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봄꽃들이 자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찬바람 속에 떨며 꽃을 피우는 것처럼 여름꽃들도 자기들만의 전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여름은 비도 자주 내리고 해가 길어서 온도 또한 높아 식물에겐 최적의 생장조건을 갖추고 있다.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들도 밤낮으로 그득할 떄여서 꽃가루받이를 걱정할 일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름이라고 해서 꽃들에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껏 승한 초록의 기운을 이기고 제 존재를 드러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들은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멸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저마다 택한 전략으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제일 먼저 색(色)으로 승부를 거는 꽃들이 있다.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금세 묵정밭을 가득 채우는 개망초나 이팝나무의 흰 빛은 눈부시도록 희어서 눈에 잘 띈다. 나리꽃 붉은 빛이나 큰 원추리 노란빛깔, 하늘말나리의 오렌지 빛깔, 자귀나무 그 화려한 분홍색은 일단 피워 내기만 하면 나비나 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다음으로는 색(色)이 딸리는 녀석들은 향(香)으로 그 한계를 극복한다. 우리의 코를 향기롭게 만드는 아카시나무 꽃이나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독한 향기를 내뿜는 밤나무 꽃, 그리고 낮은 풀섶의 꿀풀 같은 꽃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외모가 딸리는 사람들이 인간미로 승부하는 것처럼.

꽃빛도, 향기도 변변찮은 녀석들은 어떻게 이를 극복할까? 이들은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지닌 꽃빛이나 향기로는 매개자들을 유혹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한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해야 효과적인 대응책을 세울 수 있다. 이들은 그 미미한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가짜 꽃을 만들어 허장성세를 한다.

좁쌀보다 작은 꽃을 촘촘히 피우는 산수국 나무의 꽃이나 백당나무의 꽃은 그 작은 꽃들의 가장자리에 진짜 꽃의 수십 배 크기에 달하는 하얀색 헛꽃을 만들어 벌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녹음 속에서 연두색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 역시 그 특색 없는 색깔을 이겨낼 순백의 잎사귀를 마치 진짜 꽃처럼 변형시켜서 연두색 꽃을 떠받치면서 핀다.

마지막으로 향기도 볼품도 미약한 어떤 꽃들은 치열한 낮시간을 피해서 피는 시간차 전략을 구사한다. 장마 때 피는 달개비꽃(닭의 장풀)과 달맞이꽃은 그 미미한 향기와 볼품없는 모양새로는 어림없다는 걸 알고 한낮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대부분의 꽃이 만개하는 한낮을 피하여 새벽과 이른 아침 시간을 택해 핌으로써 일찍 일어난 부지런한 곤충을 부른다.
그런가 하면 달맞이꽃은 달이 떠오르는 시간, 저녁을 택해 늦게 움직이는 나방류의 곤충을 독차지하는 전략을 핀다. 우리가 생각하듯 달이 그리워 피는 것이 아니라 달이 뜰 때 날아다니는 나방류의 도움을 얻기 위해 밤에 피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꽃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색으로, 향기로, 때로는 가짜 꽃으로, 경우에 따라선 꽃 피는 때를 조절해서라도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선택하여 기어코 결실을 맺는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