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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몸이 뜨거운 꽃 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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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몸이 뜨거운 꽃 복수초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마침내 12월이다.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다. 그런 까닭에 12월 달력 한 장의 무게는 지난 11개월의 무게와 맞먹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탁상용 야생화 캘린더를 구입한다. 복수초는 야생화 캘린더의 첫 장을 단골로 장식하는 꽃이다. 순백의 눈 위로 황금빛 꽃의 자태가 사람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눈부신 까닭이다.

복수초는 눈이 녹기도 전에 제일 먼저 피어 봄을 알리는 꽃이자, 복 복(福)자에 목숨 수(壽)자를 붙여 수복강녕을 소망하는 인간의 바람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꽃이다. 새해 들어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는 뜻에서 원일초(元日草)란 별호를 갖고 있는 복수초의 개화 시기가 음력 설 무렵과 일치하는 것도 절묘하기만 하다.
쌓인 눈을 헤치고 올라와 꽃을 피우는 습성 덕분에 얼음새꽃이나 눈새기꽃 같은 이명으로도 불리는 복수초는 낯가림이 심한 수줍음 많은 꽃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람이 다가서면 꽃잎을 오므리는 까닭에 그리 알려져 있다. 실은 복수초는 그늘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람이 다가설 때 그늘이 져 꽃잎을 오므리는 것이다. 그래서 복수초를 만나러 가는 날은 흐린 날보다는 해 부신 맑은 날이 좋다.

꽃의 생김새가 코스모스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꽃잎을 들여다보면 코스모스나 장미의 꽃잎처럼 촉촉한 느낌이 아니라 화학섬유로 만든 가짜꽃잎처럼 그 표면이 번들거린다. 지상에 피어나는 꽃치고 허투로 피어나는 꽃은 하나도 없듯 복수초의 꽃잎이 번들거리는 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복수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품었음직한 궁금증 중의 하나가 눈 속에 핀 복수초 주변엔 어찌하여 한결같이 눈이 녹아 있을까 하는 것일 것이다. 그 비밀의 반은 꽃잎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번들거리는 꽃잎이 햇빛을 잘 반사하여 그 복사열이 주변의 눈을 녹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김정명씨도 그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직접 온도계를 가지고 복수초의 꽃 안의 온도를 재어 보았는데, 외기의 온도가 섭씨 영하 1~2도일 때 복수초 꽃송이 안의 온도는 5~6도였다고 한다. 무려 7~8도의 기온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만하면 복수초가 몸이 뜨거운 꽃이라 할 만하다.

복수초의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et Radde’이다. 학명에 들어 있는 아도니스는 복수초의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가 열렬히 사랑했던 미소년이다. 신화를 보면 어느 날 미소년 아도니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에 물려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그 멧돼지는 아도니스를 질투하던 헤파이스토스 혹은 아레스 신의 변신이었다고 한다. 그때 아도니스가 흘린 피가 떨어진 땅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복수초라고 한다.

복수초의 전설을 듣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아도니스가 흘린 피가 꽃이 되었다면 당연히 붉은 빛이어야 하는데 노란 색의 복수초라니 고개가 절로 갸웃해진다. 한데 신화의 무대가 된 유럽에는 붉은 빛의 복수초도 실재한다고 한다. 복수초의 종류는 대략 20여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학자들이 구분해 놓은 것을 보면 복수초, 개복수초, 세복수초 이 세 가지 정도만 알아도 꽃에 대해 문외한 소리는 면할 수 있다.

꽃이 귀한 시기에 홀로 피어나는 희귀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마구 채취하여 마당에 옮겨 심는 바람에 가까운 산에서는 복수초를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라 꽃을 만난 장소를 기억해 두면 그곳에 가면 예쁜 꽃을 볼 수 있을 테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자연스러운 법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어여쁜 꽃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야생화지도를 만들어 직접 꽃을 찾아나서는 이가 많아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다. 제대로 된 꽃의 완상법은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영원한 행복’이란 복수초의 꽃말처럼 새해에는 복수초를 보며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