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는 눈이 녹기도 전에 제일 먼저 피어 봄을 알리는 꽃이자, 복 복(福)자에 목숨 수(壽)자를 붙여 수복강녕을 소망하는 인간의 바람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꽃이다. 새해 들어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는 뜻에서 원일초(元日草)란 별호를 갖고 있는 복수초의 개화 시기가 음력 설 무렵과 일치하는 것도 절묘하기만 하다.
꽃의 생김새가 코스모스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꽃잎을 들여다보면 코스모스나 장미의 꽃잎처럼 촉촉한 느낌이 아니라 화학섬유로 만든 가짜꽃잎처럼 그 표면이 번들거린다. 지상에 피어나는 꽃치고 허투로 피어나는 꽃은 하나도 없듯 복수초의 꽃잎이 번들거리는 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복수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품었음직한 궁금증 중의 하나가 눈 속에 핀 복수초 주변엔 어찌하여 한결같이 눈이 녹아 있을까 하는 것일 것이다. 그 비밀의 반은 꽃잎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번들거리는 꽃잎이 햇빛을 잘 반사하여 그 복사열이 주변의 눈을 녹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김정명씨도 그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직접 온도계를 가지고 복수초의 꽃 안의 온도를 재어 보았는데, 외기의 온도가 섭씨 영하 1~2도일 때 복수초 꽃송이 안의 온도는 5~6도였다고 한다. 무려 7~8도의 기온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만하면 복수초가 몸이 뜨거운 꽃이라 할 만하다.
복수초의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et Radde’이다. 학명에 들어 있는 아도니스는 복수초의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가 열렬히 사랑했던 미소년이다. 신화를 보면 어느 날 미소년 아도니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에 물려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그 멧돼지는 아도니스를 질투하던 헤파이스토스 혹은 아레스 신의 변신이었다고 한다. 그때 아도니스가 흘린 피가 떨어진 땅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복수초라고 한다.
복수초의 전설을 듣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아도니스가 흘린 피가 꽃이 되었다면 당연히 붉은 빛이어야 하는데 노란 색의 복수초라니 고개가 절로 갸웃해진다. 한데 신화의 무대가 된 유럽에는 붉은 빛의 복수초도 실재한다고 한다. 복수초의 종류는 대략 20여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학자들이 구분해 놓은 것을 보면 복수초, 개복수초, 세복수초 이 세 가지 정도만 알아도 꽃에 대해 문외한 소리는 면할 수 있다.
꽃이 귀한 시기에 홀로 피어나는 희귀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마구 채취하여 마당에 옮겨 심는 바람에 가까운 산에서는 복수초를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라 꽃을 만난 장소를 기억해 두면 그곳에 가면 예쁜 꽃을 볼 수 있을 테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