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조기형의 미식가들의 향연] 맛이 주는 계급

공유
0

[조기형의 미식가들의 향연] 맛이 주는 계급

조기형 맛평가사
조기형 맛평가사
경제인들은 사업 교류를 위해서 파티를 많이 하는 편이다. 파티를 준비할 때는 그날의 요리를 초청장에 기재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파티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주인공은 그날의 요리다. 모임을 가질 때 어느 요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파티의 등급이 설정될 정도다.

파티 장소도 중요하지만 갈수록 요리에 관심을 둔다. 이렇게 유명인들의 파티에서 즐기는 맛이 이제 서서히 대중 파티로 퍼져 나가고 있다. 경제성장에 힘입어 경제적 안정을 가진 분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상호간 교류를 위한 다양한 분야의 모임들이 호텔과 고급식당에서 진행되고 있어서다.
파티 좌중에서 주도권을 잡는 사람은 대부분 음식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나 종교는 편향적으로 쏠려서 편을 가르지만, 음식은 누구나에게 관련 있는 소재이기에 좌중의 관심을 끈다. 그런데 여기서도 맛을 이야기하면 한층 더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 음식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영양과 요리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맛의 이해를 바탕으로 맛의 역할을 이야기하면 좌중의 초점을 사로잡게 된다. 그런데 맛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맛집을 찾는 사람들과 맛 전문가는 다르다.

배고프면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과 맛집을 골라서 찾아다니는 사람은 확연히 다른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맛집을 찾는 사람들은 아침에 커피를 들고 출근하면서 품위를 즐기는 것보다는 훨씬 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삼성 창립자인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도자기와 골동품을 모으던 취미와 유사한 목적의식이 있다. 삶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최고의 경험을 맛 본 사람들은 흔희 최고를 원한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최고를 모으고, 최고를 경험하고, 최고를 누리고자 하는 습관이 있다.

최고를 즐기려는 욕망은 누구나 잠재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맛집이다. 맛집을 찾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먹을 때만큼 최고로 경험하는 것으로 최고의 만족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의 발동이다. 그래서 최고의 경영자, 권력자, 예술인, 유명인들이 최고의 맛을 찾는다. 불과 50년 전에만 해도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최고의 영광과 품격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맛에 도전하거나 기웃거리는 것이 쉽게 용납되지 않는 것은 돈과 명예가 함께하지 않아서였다. 해외 유명식당 중에는 지금도 정장을 하지 않으면 출입이 제한되는 식당이 있다.

맛집을 찾는 것은 행복의 품격을 높이는 것으로 자신의 계급이 격상되는 기분이 든다. 사회적 계급은 희미해져서 사라져 가고 있지만, 인격적 계급이나 품격은 잠재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계급은 앞으로 오랫동안 남아서 삶의 풍요를 누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맛집을 찾는 것만으로 자신의 행복한 계급이 높아지는 문화는 한동안 자리 잡을 것이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와 고상한 취미를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그리고 지식이 얼마나 많은지와 같은 잠재적 계급이 있듯이 맛집을 얼마나 많이 다니고 있는지는 새로운 대상이 되고 있다.

맛을 즐기면서 얻어지는 행복의 함량은 자신의 품격을 높여준다.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은 품격이 높은 사람이다. 제일 좋은 맛집은 정성이 그득한 식당의 주인장이나 셰프가 운영하는 집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맛집은 집밥이다. 우리 집밥이 가끔 지루해질 땐 옆집의 집밥이 기대 될 정도다. 이렇게 맛이 주는 행복한 시간이 맛집을 통해서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조기형 맛 평가사('맛 평가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