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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향유와 계급에 관한 동시대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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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향유와 계급에 관한 동시대적 고찰

현대무용이란 붓으로 경쟁사회의 이솝우화 새롭게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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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최근 공연된 서울문화재단 2017년 청년예술인 창작지원사업-최초예술지원 선정작, 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이 공연되었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재해석한 이 작품은 ‘단순한 우화에서 감각적 예술로의 변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현실 속 동화’라는 카피를 단다. 캐릭터의 성격에 주제성을 부각시키고, 계급적 사회와 시지프스의 신화같은 현실 풍자는 희극성을 배가시킨다. 고통과 비극이 쌓이면 희극이 될 수밖에 없다.

계단과 철골구조로 쌓아올린 거대한 계급사회의 상징, 기타를 들고 등장한 사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알바를 하고 있는 사연, 자신의 일상, 꿈을 이야기 하면서 작품은 드라마적 구조를 띈다. 김지수 작곡의 음악들이 춤 전반에 스며든다. 사내는 기타를 연주하면서 새로 작곡된 메인 테마곡 ‘가로등’을 부른다. 회사일로 지친 듯 보이는 젊은 여성이 돈을 두고 간다. 이 장면이 끝나면 회사의 직급을 상징하는 계단 위의 샐러리맨들의 팝핀의 느낌을 주는 춤 연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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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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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

『개미의 때늦은 고백』에서 개미는 회사원들, 베짱이는 예술가로 설정된다. 친숙한 스토리 전개는 공감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현재를 희생해 미래를 바라보는 ‘개미’와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는 ‘베짱이’와의 소통과 공존을 다룬다. 즐거운 인생을 찾아가는 개미와 베짱이를 통해 노동(강제적 삶)과 놀이(자발적 삶)의 이분법적 구도가 형성된다. 분주한 춤 연기자들의 기계 같은 움직임은 <모던타임스>의 우울을 불러오고, 관객들은 오늘의 자신을 돌아본다.

이 작품은 원색의 의상들이 개미들의 개성을 보여주면서 무용극을 차용한다. 춤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도 낭만은 실핏줄처럼 살아 움직이며, 개미(여자 샐러맨)와 베짱이(알바생)는 포장마차에서 고단한 삶을 서로 위로하고 하나가 되는 배려의 마음을 보여준다. 사무실 풍경은 다시 계급성을 보인다. 직급이 낮은 직원에게 계속 쌓이는 업무(짐, 상자), 마침내 여 직원의 분노가 폭발하고, 박스는 무참하게 무너진다. 이어지는 여인과 여인을 위로하며 친구가 되어주는 환상의 베짱이와의 이인무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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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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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

개미와 베짱이 중에서 ‘개미가 진리이고 베짱이는 부도덕한 게으름뱅이이다.’라는 전제는 처음부터 오류였다.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생존의 문제만을 책임져야하는 집단의 삶은 절망과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금수저들이 갑질을 하는 세상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는 미래를 꿈꾼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이미 해답을 제시한 바 있다. 계단식 무대 세트는 우리사회가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는 계급을 상징한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사회의 허무주의적 대안으로써 후회 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현재를 즐기는 베짱이의 삶이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 중에 안무가 황찬용은 즐기는 사람을 택하고, 그 방법을 제시한다. 안무가는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인들과 예술가들 사이의 소통과 공존의 필요충분조건을 물어보면서 담론을 조성한다. 『개미의 때늦은 고백』은 편하게 ‘리얼 궁상 스토리’라 불려진다.
『개미의 때늦은 고백』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여섯 개의 장, 프롤로그 ; ‘우리 삶의 이야기’, 1장 ;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2장 ; 마음속의 창문, 3장 ; 말할 수 없는 이야기, 4장 ; 친구라는..., 에필로그 ; ‘우리 이야기는 진행 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갈등이 마무리되면 플로어에 들어차는 환한 빛, 풀브라이트의 조명을 타고 오인무가 현대인들의 불안을 위로하는 듯 춤을 추면서 춤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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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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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용 안무의 『개미의 때늦은 고백』

리얼리즘을 바탕에 두고 현대무용의 프레임에 서정성을 극대화시킨 작품은 안정감과 도전적 자세를 보여준다. 충자의 본질을 꿰뚫으면서 창조적인 힘을 발휘한 작품은 춤 문화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면서 대중과의 관객을 좁혔다. 정준구(연기자)의 능청스런 연기와 더불어 현실적 문제를 부각시킨 젊은이들을 위한 동화 『개미의 때늦은 고백』은 직선적이면서 주변을 아우르는 황찬용 안무의 창작성과 소통의 힘, 미래 창작 가능성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공간의 확장, 미장센에 염두를 둔 구성, 김대원・김덕영・김문주・주정현・황찬용의 세련된 춤 기교가 안무가의 함축된 춤 구사로 현대무용의 난해함을 털어내고 황찬용 안무가의 바람직한 향방을 제시하였다. 거칠 것이 없는 패기와 열정을 견지하고, 적절한 주제와 세련된 춤 연기력으로 격정을 필터링하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와 공감을 준 주목할 아티스트의 안무작을 본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황찬용, 작은 공간에서 열린 영역을 지향하면서 잘 알려진 내용을 유의미하게 만든 현명함을 보여주었다. 산이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듯이 자신의 춤에 개성이 드러나는 채색을 하고 모양과 소리, 빛의 농도를 조절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자신의 작은 경험들을 축적하여 교양적 수련을 지속하여 원숙한 춤의 완성자가 되기를 바란다. 『개미의 때늦은 고백』은 현대무용이란 붓으로 경쟁사회의 이솝우화를 새롭게 써낸 우수작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