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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한국현대무용의 새 전형 보여준 유쾌한 상상…최상철 안무의 '혼돈(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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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한국현대무용의 새 전형 보여준 유쾌한 상상…최상철 안무의 '혼돈(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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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안무의 '혼돈(Chaos)'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화제작들로 각인된 춤 철학자 최상철(중앙대 무용과 현대무용전공 교수) 안무의 2017 창작산실 신작 『혼돈(Chaos)』 은 서구사조에 깊게 의존하는 ‘한국현대무용 창작의 새로운 방향 모색’이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안무가는 현대무용에 낀 기름때를 채식성 움직임으로 씻어내고자 한다. 최상철 현대무용단은 그 해답을 전통과 현대와의 조화로운 어울림에서 찾고 있다. 호불호가 명백한 『혼돈』도 논란을 부른다.

『혼돈』의 시제는 현재이다. 극히 높은 온도와 밀도에서 폭발된 사건 이후 전개되는 정돈의 모습은 질서를 찾아간다. 안무가는 이분법적 논리에 빠져버린 현실에 울분을 표하며 품격 있는 선지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혼돈은 좌우(左右), 내외(內外), 흑백(黑白), 정오(正誤), 용불용(用不用)의 극심한 대립에서 파생된다. 썩은 물은 퍼내야 하고, 과다섭취한 지방분은 빼내야 한다. 정리되어야 마땅한 혼돈은 고요와 정적, 평강과 화평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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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안무의 '혼돈(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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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안무의 '혼돈(Chaos)'

안무가는 ‘혼돈’을 사유한 몇 개의 이미지들로 작품을 구성한다. 사회적 현상에 반응과 적용이 수반된 『까망천사』, 『빨간백조』, 『논쟁』, 『동물농장의 봄의제전』 같은 직설적 주제로 『혼돈』은 최상철식 풍자를 이어간다. 변화무쌍한 내면의 갈등들이 만나 경계점을 넘나들며 현실과 창밖 건너편에 존재하는 이질적 형태의 무엇인가와 화해하고 질서를 찾아간다. 소속되어 있었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고립된 세상은 변화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상태가 된다.

안무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무용가의 고민을 보여주는 창작방식을 제안한다. 그는 중재의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예술의 원초적 기능과 가치에 집중한다. 안무가 최상철은 현대무용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거추장스런 세트 없이 사용되는 전동 휠이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며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춤 연기자들이 가슴을 붙인 전동 휠은 대폭발 이후 물질의 충돌(衝突), 신의 신성(神性), 동물의 수성(獸性), 허상적 프레임의 상징을 오가며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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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전통을 형성하는 『혼돈』은 스트리트 댄스의 역동적 크럼프 움직임(공격성, 분노감 표출)과 한국전통춤 동작들을 활용한다. 몇 개의 상징적 동작들을 발췌한 씬들의 모음은 반복성, 연속성을 보여준다. 우리춤 동작의 활용은 우리 춤에 내재된 함축적 은유적 의미를 현대적 기법을 사용하여 단순미・여백미를 크럼프 움직임과 혼재시킴으로서 익숙함 속에 낯설음을 유도하는 혼란의 도구로 활용된다. 이 부분이 개념적 틀에서 존중받는 점이다.

관객은 순수한 시각적 몰입을 통해 신체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색한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현대무용가 김재덕의 작곡은 전통의 현대성을 추구하고 작금의 현대무용 창작경향에 질문을 던진다. 조명 변화가 거의 없는 무대에 스파이더맨의 슈트를 연상시키는 옷을 착용한 선홍(鮮紅)의 중재자는 혼돈의 경계를 넘나들며 질서를 만들고 다양한 성상(性像)의 상징이 되어 균형을 잡아간다. 세련되고 지혜로운 발상은 통합적 체계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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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안무의 '혼돈(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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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안무의 '혼돈(Chaos)'

안무가 최상철은 즉흥 기반의 창의적 사고로 다양한 리서치와 변화과정을 거쳐 움직임의 질적 변화를 유도한다. 열여덟 명의 무용수는 대체로 안무가와 여러 해 동안 여러 작품을 해오면서 느낌을 공유해 왔다. 진정성을 띈 안무가와의 작업은 독창성과 정체성 문제, 동양적 가치 판단과 철학적 근거를 매개로 한 새로운 안무 유형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화제를 불러왔다. 안무가는 동시대적 한계와 냉정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주장으로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혼돈』은 한국적 현대무용을 선호하는 최상철이 소풍을 떠나듯이 접근한 작품이다. 그는 한국 춤 미학의 재발견과 신유형 모색을 통한 한국현대무용의 확장을 추구한다. 최상철현대무용단은 부단한 실험과 도발적 작품들로 무용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최상철의 안무작 이면에 깔려있는 따스한 감성은 그가 폭풍우가 지나면 바다는 잔잔해지고, 햇살도 따사로와 지는 바다의 이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돈』은 세상을 정제하는 청량제 기능의 걸작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