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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김운미 쿰댄스컴퍼니 제19회 묵간 공연…창작무용의 젊은 기세 예증시킨 화제작 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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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김운미 쿰댄스컴퍼니 제19회 묵간 공연…창작무용의 젊은 기세 예증시킨 화제작 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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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안무의 『감아 찬』
옥합을 깨트릴 때 춤꾼들은 경이로움에 눈뜨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묵간(墨間)은 함(函)을 열 때 신(神) 아브락사스의 양면을 접한다. 여성으로서 당참, 여인으로서 부드러움, 처자로서의 희망이 전통과 이음 사이에서 정제되면 ‘삶과 맺음’에 집중한 무용단의 주제의식은 관심사가 되어왔다. ‘묵간’의 춤꾼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성숙시켜 왔다.

최근 포이동 M극장에서 ‘새로움이 공존하는 자유로운 무대’라는 슬로건을 내건 김운미 쿰댄스컴퍼니(예출총감독 김운미 한양대 무용과 교수, 대표 이영림)의 제19회 ‘묵간’ 첫째 날, 자신들의 이야기 상자를 조심스럽게 연 재기발랄한 젊은 여성안무가들의 세 작품은 김소연 안무의 『감아 찬』, 전미라 안무의 『삭제된』, 김재은 안무의 『달,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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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안무의 『감아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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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안무의 『감아 찬』

김소연 안무의 『감아 찬』은 여성으로서 세상을 대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장고를 주조로 타악(드럼)을 탄 여성 4인무(오지은 이수빈 최연희 김소연), 자신의 영역에서 심호흡으로 기를 고르며 세상을 맞이하는 열정을 담는다. 생성의 근원, 간헐적 암전이 집중을 유도한다. 여성들은 관객 앞으로 다가서고, 한 사람의 용기로부터 둘, 셋이 되어 희망은 퍼져 나가고 주장이 담긴다.

이질적 기타 음(音)을 탄 독무, 가시와 불가시의 경계를 표시한다. 호박 조명이 신비감을 부르며 자유 공간을 조성한다. 만조명(滿照明)은 인원을 하나씩 채워나간다. 여성의 삶은 박제된 듯, 이어온 어머니의 세대는 제시된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린다. 눈물로 쓴 사연들을 기억한 여성들은 전사적 모습을 닮는다. 내공으로 쌓아올릴 의지의 탑, 가볍게 전율이 인다.

이 작품은 1장 ‘공간, 틀’, 2장 ‘각각의 이야기’, 3장 ‘채우다’, 4장 ‘완전한’의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시대의 지극한 여성적 감성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눈을 감아 보이는 것들로/ 보이지 않는 것들로 채운다./ 채워간다./ 그것들 하나하나의/ 의미가,/ 그 관계가 채워져 오롯이 하나가 된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미래가 자신의 편인 듯하다.

느리게 여유롭게 의지의 뜰에 내린 우울을 스틸드럼이 깨운다. 나태를 불용하는 ‘감아 찬(wound kick)’의 계율이 얹힌다. 보랏빛 전의(戰意)는 삶을 아름답게 하는 마음의 양식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푸른 파도를 가르는 돛단배처럼 젊은 여성들은 거침없이 항해에 나선다. 진청 속에서 만나게 될 모험은 상상으로 맡기고, 여성이 연마되면 여인이 될 것이다.

안무가는 보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에너지, 향기, 매력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중시하고 ‘시각적인 것’을 배제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내러티브로 설정한다. 보지 않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은 이야기의 흐름에 넣지 않고 원초적 공간에서 느끼게 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것의 이면에 다양함이 존재함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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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라 안무의 『삭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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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라 안무의 『삭제된』
전미라 안무의 『삭제된』은 자신을 탐구하고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자신의 감성과 이성은 진정한 여성상을 선망하건만, 여성이라는 이름에 달라붙은 고리들이 운신의 폭을 좁힌다. 지극히 정상적인 고민, 타인에 대한 열등감에서 빚어진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지속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은 되고자 하는 존재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자신에게서 멀어져 간다.

프롤로그(‘타인의 시선’)를 비롯한 네 개의 장(1장 ‘선망의 여성상’, 2장 ‘의식’, 3장 ‘나와의 대화’, 4장 ‘혼합, 삭제된 것은 없다’)은 5인무(남성 오정무, 여성 강소연 이수경 이수현 전미라)가 담당한다. 라이브로 진행된 키보드 전자음에 밴드 포맷은 조형의 깊이감을 살리고, 두 손으로 눈 가리고 느리게 걸어가면 사라질 듯한 순수가 자신에게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다. 자신 만이 변해있을 뿐이다.

1장 ‘선망의 여성상’은 가슴 한켠에서 요통치는 다양한 감정을 끌어내는 전자음의 변주에서 시작된 춤, 현장감을 살리는 ‘모그’의 음악은 만조명 속 숫자 조합의 묘미를 살린다. 백색 의상의 다섯 연기자들은 타악과 어울린 얇고 맑은 소리는 선망의 여인의 가녀림을 표현해내며 정형의 춤을 비튼다. 슬픔, 외로움에서 벗어나 의존하고 싶은 감정들이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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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라 안무의 『삭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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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라 안무의 『삭제된』

2장 ‘의식’ 3장은 ‘나와의 대화’, 끊임없이 ‘나’다움을 거부한다. 어디에도 자신의 주체성은 없다. 그 안에서 꿈틀이는 선망의 여성상을 부정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열등감, ‘나’는 그들이 될 수 없다. ‘나’와의 춤의 대화를 통해 ‘나’다움을 보여주고 비집고 나오려는 것들을 삭제한 채 내일을 살아간다. 굵직한 거문고 소리로 여성의 열등감을 무너뜨리는 내면의 소리다.

4장 ‘혼합, 삭제된 것은 없다’는 동해안 별신굿의 드렁갱이, 청보 장단이 개성이 강한 ‘나’다움을 표현하고, 현대적 움직임과 굿음악과의 어울림은 ‘나’를 상징하는 방식이다. ‘나’를 비워내며 비울 것을 하나씩 삭제한다. 북과 바라소리가 혼재한 가운데 역동적 춤은 군더더기를 남기지 않는다. 지속되는 굿의 여운 속에 자신은 생략된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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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안무의 『달,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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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안무의 『달, 조각』

김재은 안무의 『달, 조각』은 달과 여성성을 비유한 작품으로 공존과 자전, 과거 여성과 현대 여성의 사이의 변화, 삶의 마감(그믐)과 새 삶(초승)의 탄생의 중심에 있는 여성, 음양에 얽혀있다. 약하지만 강한 여성의 표현을 두드러지게 음악이 담당한다. 1장을 제외한 전 장(場)에 흐르는 발모라이(Balmorhea)의 라이브 녹음앨범은 달과 여인의 감정을 조화롭게 연결한다.

1장 ‘달과 여인’은 암전 속, 강조되는 등불 두 개, 무음으로 여인의 다리가 달의 음기를 하체로 받아 시작됨을 상징한다. 외로운 달, 비수의 푸른 빛 달,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변화하는 변덕스러운 달, 달이 말라가는 저녁, 만월을 향한 그리움, 만삭의 배처럼 부른 탄생의 달,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르는 여인의 뒷모습은 여러 상상을 가능케 만든다.

2장 ‘그믐달’은 ‘Bowsprit(하현달)’이 흐른다. 첼로,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세 현악기가 주조음을 이루고 뒷모습 실루엣 여인들의 신비감을 극대화한다. 여인들이 서서히 움직임을 보인다. 라이브 앨범은 생생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중간에 하수 앞에서 등장하는 독무는 1장을 떠올리게 하며 하체를 중심으로 점점 상체까지 타고 올라가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의 시작을 알린다. 후반부로 드럼과 기타, 사람의 발소리가 첨가되며 뒷모습 여인들이 각자 춤추면서 흐름의 변화와 긴장감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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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안무의 『달,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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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안무의 『달, 조각』

3장 ‘말라가는’에서 ‘Steerage and the lamp(선실과 램프)’는 달 그 자체의 모습을 조명 소품을 활용해 추상적으로 수채화 같은 느낌을 전한다. 호흡의 묘미를 보이며, 자유로운 역동적 등불은 청색, 벽에 등 하나 불붙이며, 불씨는 사그라지며 모습을 감춘다. 말라가고 건조하지만 달의 공전을 믿으며 다시 빛나는 여성의 희망적 삶을 꿈꾸는 메시지를 담는다.

4장 ‘차오르는(full)’, ‘Clamor(아우성)’는 삶의 불씨가 가장 화려하게 타오르는 순간을 담고 있다. 강한 드럼 비트와 피아노 반주, 현악기들이 어우러져 차오르는 감정과 가장 빛나는 모습을 전한다. 네 명(김예은, 김수민, 성혜경, 김재은)의 춤꾼들은 빠르게 환한 달빛을 향해 들어가며, 급 암전되어 신비의 4인무을 마무리한다. 여성의 삶도 달과 다를 바 없음이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