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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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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⑱ 청복(淸福)을 추구하다

강정민(변호사·소설가)
강정민(변호사·소설가)

지금까지 7회에 걸쳐 인류의 스승들이 땅의 지혜가 아닌 하늘의 지혜를 추구했다는 점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스승들의 가르침에 있어서 또 다른 교집합은 이 분들이 땅의 복이 아닌 하늘의 복을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 두 가지 복이 존재합니다. 하늘의 복은 무엇이고, 땅의 복은 무엇일까요?

1799년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병조참판을 지낸 오대익(吳大益) 선생에게 보낸 71세 생일 축하 편지를 보면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이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이 나옵니다.

“외직으로 나가서는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관인(官印)을 허리에 두르고 풍악을 잡히고 미녀를 끼고 놀며,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초헌(軺軒 종2품 이상이 타던 수레)을 타고 비단옷을 입고, 대궐에 출입하고 묘당(廟堂)에 앉아 사방의 정책을 듣는 것을 ‘열복(熱福)’이라 하고, 깊은 산중에 살면서 삼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며, 맑은 샘물에 가서 발을 씻고 노송(老松)에 기대어 시가(詩歌)를 읊으며, 당(堂) 위에는 이름난 거문고와 오래 묵은 석경(石磬 악기의 일종), 바둑 한 판[枰], 책 한 다락을 갖추어 두고, 당 앞에는 백학(白鶴)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화초(花草)와 나무, 그리고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돋구는 약초(藥草)들을 심으며, 때로는 산승(山僧)이나 선인(仙人)들과 서로 왕래하고 돌아다니며 즐겨서 세월이 오가는 것을 모르고 조야(朝野)의 치란(治亂)을 듣지 않는 것을 ‘청복(淸福)’이라 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약하면 세상의 부과 권력과 명예와 쾌락을 마음껏 누리는 복이 열복(熱福, 화끈한 복), 하늘이 주는 기쁨과 안식, 평화를 누리는 복이 청복(淸福, 맑은 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청복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말하고(에베소서 1장 3절), 열복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및 이생의 자랑을 의미합니다(요한1서 2장 16절).

다산은 사람이 이 두 가지 중에 선택하는 것은 오직 각기 성품대로 하되, 하늘이 매우 아끼고 주려 하지 않는 것은 청복(淸福)이라면서 열복을 얻은 이는 세상에 흔하나 청복을 얻은 이는 얼마 없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사람이 열복과 청복을 함께 누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불끈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고 여러 사람에게 큰소리치기를 ‘내가 장차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을 모두 얻어 함께 누리겠다’고 하면 어이가 없어 비웃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고 하늘도 그 오만하고 망령됨을 미워하여 결코 주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큰소리치며 말하기를 ‘나는 장차 내 일생을 3기로 나누어 전기에는 청복을 누리고 중기에는 열복을 누리고 말기에는 다시 청복을 누리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더욱 물러나 그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젊어서는 부지런히 뛰어 세상의 복을 많이 누리고 늙어서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청복을 누리고 살길 꿈꿉니다. 실제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산은 이런 삶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단호한 것일까요?

그것은 열복과 청복이 완전히 달라 결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열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절대로 청복을 누릴 수 없고 청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절대 열복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선포합니다(마태복음 19장 24절). 열복을 추구하는 부자는 청복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스승들은 땅의 지혜를 버리고 하늘의 지혜를 추구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땅의 지혜는 땅의 기름진 복을 얻기 위해 필요한 지혜이고 하늘의 지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얻기 위한 지혜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류의 스승들이 땅의 기름진 복이 아닌 하늘의 신령한 복을 추구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의 기름진 복만 알뿐 하늘의 신령한 복은 그 존재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당연히 땅의 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늘의 신령한 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강정민(변호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