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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음식윤리, 이론 따로 실천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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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음식윤리, 이론 따로 실천 따로

김석신 가톨릭대 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교수
나는 자칭 음식윤리 전문가다. 음식윤리란 한마디로 음식을 만들고, 팔고, 먹을 때 지켜야할 도리다. 음식윤리의 세 가지 키워드는 생명, 행복, 지혜라고 한다. 왜?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행복을 주는 음식을 지혜롭게 만들고, 팔고, 먹을 때, 굳이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생명과 행복과 지혜 가득한 좋은 사회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일은 대부분 아는 만큼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유기농산물에 찬성표를 던지면서도 실제로 돈 내고 살 때는 머뭇거리지 않는가. 이렇듯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갭(gap)이 있게 마련이다. 자칭 음식윤리 전문가인 나 역시 내가 아는 이론과 내가 행하는 실천 사이에 엄청난 크레바스가 존재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 갭을 좁히려면 음식을 직접 만들어봐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내는 학원보다 집에서 먼저 배우라면서 팔을 걷어붙였다. 난 그냥 지나가는 비처럼 말했는데, 아내의 답변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 아내에게 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학생의 학습열은 어정쩡한데 선생님은 엄청난 열의와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선생님의 열의가 큰 만큼 소극적인 학생을 향한 핀잔 또한 강렬했다. 그 강렬함에 나는 장렬하게 쓰러질 수밖에. 아내는 ‘생명과 행복을 주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지혜’라면서, “아니, 음식윤리에 합당하게 음식을 만들어야지, 이게 뭐에요? 음식을 이렇게 대충 만들면서 음식윤리 강의를 한단 말이에요?” 나야 시무룩했지만, 아내는 통쾌하게 웃었다.

어느 날 달걀찜을 배웠다. 증기로 찌지 않고 직접 익히는 방식이라 간편해서 좋았다. 먼저 달걀 양만큼(1)의 물을 법랑냄비에 넣고 곱게 간 마늘과 새우젓을 조금(2) 넣으란다. 물이 끓을 동안 적절한 크기(3)의 그릇에 달걀을 풀은 다음 파를 곱게(4) 썰어 넣고, 명란젓도 잘게(5) 썰어 잘(6) 섞는다. 물이 끓으면 달걀 풀어놓은 것을 넣으며 잘(7) 휘젓고 뚜껑을 덮고 타지 않도록 불을 적절히(8) 조절하고 기다리란다. 위의 (1)부터 (8)까지는 명확한 객관적 지침이 물론 없다. 그래도 알아서 잘 해야 하는 것이 포인트란다. 그 애매함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터널 안의 교통체증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육적 핀잔. 대충 써는 칼질, 슬쩍 헹구는 설거지, 너무 많이 쓰는 주방세제로부터, 음식이 끓는데 자리를 비우는 일, 휘저을 때 힘 조절 부족, 생각하지 않고 대충 넣는 양념, 먹는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는 마음, 재료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자세까지. 아이스크림의 반이 공기인 것처럼, 달걀찜의 반은 핀잔으로 채워졌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달걀찜은 다행히 맛이 좋았다. 달걀찜을 음미하면서, 포탄세례가 멈춘 참호에서 고향을 그리는 병사처럼, 어린 시절의 달걀과 닭을 떠올렸다. 병아리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이불 속에 몰래 달걀을 넣었다가 달걀이 깨져 엄청 혼났다. 교문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엄마 몰래 키우다 혼나기도 했다. 그래, 맞아. 닭이 달걀을 낳느라 얼마나 애썼겠어? 잘 알잖아, 변비의 고통. 매일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달걀을 낳는 닭. 지난 해 살충제 달걀 파동 뉴스에서 본 닭 사육 현장. 생존 자체를 행복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닭의 일생. 그런 닭에게 너무 소중한 생명과 행복의 소산인 달걀. 그 달걀을 별 생각 없이 사서 무감각하게 먹는 나. 아니야, 그러면 안 되지. 난 닭의 소중한 생명과 행복 자체인 달걀을 먹으면서 나의 생명과 행복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이 깨달음이 바로 음식윤리의 지혜잖아? 그렇지, 맞아. 이런 자세로 내가 음식을 만들어야, 음식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만들고 팔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지. 몸에 좋은 약이 쓴 것처럼 달걀찜 속의 아내의 핀잔은 썼지만, 결과적으로 음식윤리의 생명, 행복, 지혜를 깨우쳐주었다. 아내 덕분에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갭이 조금 좁혀졌다.


김석신 가톨릭대 식품영양학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