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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유통기한을 제대로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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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유통기한을 제대로 알자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
꽤 오래 전 직장생활을 할 때다. 분말음료제품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분말주스 제품이 습기가 차서 덩어리가 엉키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회사에서는 폐기처분의 결정이 내려졌다. 하루 종일 하수도에다 이를 버리고 있는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녹이면 맛있는 주스가 되고 인체에 위해한 요소가 없는지라 국군장병들에게 위문품으로 보내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어떻겠느냐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나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만일 이렇게 정상적이지 못한 제품을 선물로 보내면 군인들이 제대 후 자사제품을 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지금의 가격으로 환산해도 1억 원이 넘는 가치의 제품인데다 미생물의 위협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덩어리가 되었다는 이유로 버린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얼마 전 모 회사 제품이 사회복지원에 보내졌는데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된 제품이라서 찜찜하였다는 이야기가 신문지상에 보도된 바 있다. 회사 측에서는 실수라고 죄송하다고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그러나 내용을 깊이 들어 가보면 잘 잘못을 떠나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할 부분이 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해당과자의 유통기한은 하루 밖에는 남지 않았으나 내용물의 특성으로 보아 2~3개월 동안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을 제품이다.

우리는 유통기한을 먹어서는 안 되는 제품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포함된 영양소나 미생물이 포장지에 제시된 것보다도 감소가 되면 유통기한으로 표시하여 그 시점 이내에 판매가 이루어져야 법에 저촉을 받지 않는다. 해당제품은 유산균이 6억 마리나 들어 있는 제품이다. 당연히 6억 마리의 유산균이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면 다른 식품 성분에 아무런 하자가 없어도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로 보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유통기한이내에 소비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식품의 유통기한을 설정함에 있어 이와 유사한 경우들이 있다. 김과 같은 제품은 바삭바삭해야하는데 눅눅해지면 팔 수 없는 제품이 되고 만다. 단지 수분이 흡습되어 조직감이 변해졌다는 이유이다. 말랑말랑한 찹쌀떡은 수분이 날아가 딱딱해지면 내용물의 변화가 없어도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판정한다. 그 떡을 먹어도 아무런 탈이 없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제품으로 인식한다.

우리들은 유통기한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만 이해를 하고 있다. 수입제품에서는 상미기한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있는데 이는 기한이 지나면 맛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표시다. 먹어도 상관은 없으나 맛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사실 유통기한을 설정함에 있어 고기류나 생선 유제품과 같이 미생물의 개체수를 기준으로 설정하는 경우 유통기한이 지나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반면 식중독 위험은 없지만 입안에서 느끼는 조직감이 정상적인 것과는 차이가 나는 것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먹어도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다. 설탕, 소금, 향신료, 밀가루, 사탕, 건빵, 과자 등과 같은 제품이 이에 해당된다. 따라서 식품의 유통기한을 한 가지 기준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몸이 아프다고 모두 병원에 입원할 필요는 없다. 아픈 경우에도 스스로 면역시스템에 의해 자가 치료될 수 있다면 간단한 약만으로도 해결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심각한 상태라면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접하는 식품도 유통기한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먹으면 목숨이 위태로워 질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먹는 식품의 약 75%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도 음식물쓰레기나 유통기한이 지나서 폐기하는 식품이 거의 10조원에 도달 정도로 엄청난 양의 식품을 버리고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먹는 식품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좀 더 차분하게 대처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식품회사가 잘못을 인정하였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유통기한이 가까워진 제품을 가져가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복지관에 전화로 유통기한이 가까운 제품이 있는데 가져갈 의향이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문의하고 필요한 곳에 나누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