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로 알고 있는 나무는 콩과의 상록교목으로 북미대륙이 원산인 아까시나무다. 이 나무는 1897년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월미도에 심어진 외래식물이다. 아카시아 나무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심어진 것은 60년대다. 미국인 선교사 루소의 권유로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림복구를 위한 목적으로 심기 시작했다.
특히 밀원식물로 4만2000여 양봉농가의 벌꿀 생산량의 80%가 이 아카시아 꽃에서 생산된다. 연간 약 5만 드럼의 꿀을 생산하여 1000억 원이 넘는 양봉농가의 소득을 올린다고 하니 소득원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는 꽃나무다.
진짜 아카시아 나무는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자라는데 기린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한데 특이한 것은 기린은 한 나무에서 5분 이상 잎을 뜯지 않는다고 한다. 그 까닭은 5분이 지나면 아카시아 나무들이 기린이 싫어하는 쓴맛을 만들어 잎으로 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없는 나무들이라고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 것이다.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버리면 다음해에 나온 새 가지엔 더 크고 날카로운 가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카시아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양가가 많다고 따먹는 두릅나무 순이나 엄나무 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가 하면 같은 아카시아 나무라도 초식동물의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는 가시를 촘촘히 내어달지 않는다. 나무들이 가시를 내어다는 것은 자신을 해치려는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수단이다. 그래서 ‘초식동물이 사라지면 아카시아도 가시를 버린다.’고 주장하는 생태학자의 말은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이를 뒷받침 할 사례로 울릉도 특산식물 중 하나인 섬나무 딸기를 들 수 있다. 육지의 산딸기가 섬으로 옮겨져 진화한 이 식물은 고라니 같은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 살면서 가시를 버리고 대신 잎과 꽃의 크기를 키웠다. 신기하게도 섬나무 딸기를 육지에 옮겨 심으면 몇 해 지나지 않아 다시 가시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그리 보면 식물이 지닌 가시란 생태계에서 가장 힘이 없는 식물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가시를 달고 있는 나무야말로 가장 약한 존재란 생각이 든다. 자기보호를 위해, 오직 살아남기 위해 온몸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사는 아카시아 나무가 힘겹게 미투를 외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모습 위로 오버랩 되는 현실이 슬프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