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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제비꽃 피는 봄이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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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제비꽃 피는 봄이 찾아와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산책길에서 보랏빛 제비꽃을 만났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고 했는데, 산책길에서 찬바람에 떨고 있는 제비꽃과 마주친 순간, 나는 봄을 직감했다. 앙증맞은 제비꽃이 봄이 왔음을 인증이라도 하듯 내 가슴에 보랏빛 꽃 도장을 꾹 눌러 찍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에게도 제비꽃 피는 봄이 찾아온 것이다.

제비꽃은 꽃의 모양새가 하늘을 나는 제비를 닮아서, 제비가 돌아오는 삼월 삼짇날 즈음에 피어서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선시대에는 오랑캐꽃이라 불렀는데 이는 이 꽃이 필 무렵 북쪽의 오랑캐가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은 때문이라고도 하고, 꽃송이 뒤의 꿀주머니가 오랑캐의 뒷머리 모양을 닮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외에도 꽃자루 끝이 등을 긁는 여의(如意)와 닮아 여의화(如意花), 씨름꽃, 장수꽃 등으로도 불린다. 제비꽃류를 통칭하는 속명이 비올라(Viola)인데 보라색을 바이올렛(Violet)이라고 하는 것은 제비꽃의 색을 보고 붙인 때문이다.
제비꽃은 여러해살이풀로 다 자라봐야 그 키가 한 뼘을 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만도 60여 종이나 될 만큼 다양한 종을 자랑한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잘 어울리는 끈질긴 생명력 덕분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제비꽃은 주로 보라색과 흰색이지만 분홍색 꽃이 피면서 잎이 고깔처럼 말려 나오는 고깔제비꽃, 흰색 꽃이 피며 잎이 긴 삼각형인 태백제비꽃, 가장 높은 곳에 분포하며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제비꽃도 있다.

제비꽃은 꽃을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식물 중 하나로 그 용도도 다양하다. 어린잎을 나물로 무쳐 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기도 하고 튀겨 먹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전초를 달여 열로 인한 종기, 가래, 부인병, 발육촉진, 설사, 통경에 쓰며, 뿌리와 꽃은 피를 맑게 하고 부스럼을 치료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염색제의 원료나 향수의 원료로도 쓰인다.

제비꽃은 3월에 피는 둥근털제비꽃을 시작으로 6월 장백제비꽃까지 종류별로 꽃피는 시기가 각기 다르다. 꽃이 지고 열매가 익으면 세 갈래로 벌어져 씨앗을 퍼뜨리는데 신기한 것은 꽃이 없는 여름과 가을에도 씨앗을 맺는다는 것이다. 식물학에서 꽃잎을 열지 않고 씨앗을 맺는 꽃을 ‘폐쇄화’라고 한다. 제비꽃은 벌이 없이도 씨방 속에서 스스로 가루받이를 하여 씨앗을 만들어 내는 폐쇄화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여러해살이풀인 제비꽃은 뿌리번식능력도 뛰어나 봄이 되면 옆으로 길게 자라있는 뿌리 곳곳에서 제비꽃 새싹이 올라온다. 그 강한 생명력 덕분에 우리는 봄이 되면 지천으로 피어난 제비꽃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제비꽃이 있는 곳에는 꼭 개미집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제비꽃 씨앗에는 개미들이 좋아하는 ‘엘라이오솜’이라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영양덩어리가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미들은 제비꽃 씨앗이 떨어지면 이 씨앗을 통째로 물어다 개미집으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엘라이오솜’만 떼어 개미집으로 들여가고 씨앗은 개미집 밖에 버린다. 이러한 행동을 ‘개미 씨앗 퍼트리기’라고 하는데 보다 멀리, 그리고 넓게 씨앗을 퍼뜨리기 위한 제비꽃의 전략이다. 덕분에 제비꽃은 아주 손쉽게 다양한 곳에서 꽃을 피울 수 있고 개미들은 자신들의 좋은 먹잇감을 얻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의 전략인 셈이다.

오는 31일 방북하는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 제목이 ‘봄이 온다’로 정해졌다고 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어렵사리 찾아온 한반도 해빙의 의미를 담아 정한 제목이라고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한반도 긴장이 한껏 고조된 시점에서 ‘봄이 온다’는 제목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언제 어떤 돌발변수가 생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이 들판에 제비꽃을 피우는 봄바람처럼 얼어붙은 동토에 화해의 훈풍이 되길 기대해본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