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향기] 금은화를 아시나요?-인동꽃

기사입력 : 2018-06-0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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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아침 산책길에서 골목을 돌아 나올 때였다. 은은한 꽃향기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초록덩굴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희고 노란 인동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 향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꽃을 보는 일은 소확행(小確幸)이다. 소확행이란 일상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하는 말로 서울대 트렌드분석센터에서 2018년 10대 소비 트렌드로 선정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링겔한스 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한 이 말은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고 일상 속에서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한다는 의미다.

일찍 시작된 폭염과 함께 성큼 다가선 여름의 길목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에 인동(忍冬)이란 이름이 생뚱맞게 들리기도 하지만 인동덩굴을 제대로 알고 나면 그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인동초로 부르기도 하지만 인동은 인동과에 속하는 덩굴성 나무로 풀이 아니다. 반(半)상록성이라 겨울 추위가 매운 중부 이북에선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지만 남녘에서는 푸른 이파리를 단 채 겨울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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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꽃

인동(忍冬)이란 이름은 혹독한 겨울에도 잎을 매단 채로 겨울 추위를 견디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자리가 밋밋한 잎은 마주 달리고, 잎겨드랑이에서 입술 모양의 흰색 꽃이 2개씩 피어나느데 꽃은 입술처럼 벌어져 다시 갈라진다. 꽃의 수술이 할아버지 수염 같다고 ‘노옹수(老翁須)’, 꽃잎 모양이 해오라기 같다고 ‘노사등’, 꿀이 많은 덩굴이어서 ‘밀보등’, 귀신을 다스리는 효험있는 약용식물이라 하여 ‘통령초’, 꽃의 색이 하얀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금은화(金銀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늦은 밤 피기 시작하여 다음날 오후엔 미색을 띄었다가 점차 노란색으로 변색이 되어 이틀 후 진다. 처음부터 흰 꽃과 노란 꽃이 따로 피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흰 꽃으로 피었다가 노란 색 꽃으로 변하여 지는 것이다. 꽃 색이 변하는 것은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벌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일종의 배려이다. 이를테면 흰 꽃은 미혼의 처녀이고, 노란 꽃은 유부녀라고나 할까. 노란색은 나누어 줄 꿀이 없다는 신호이자 임신했다는 선언인 셈이다. 요즘은 유럽 원산인 ‘붉은 인동’으로 불리는 ‘셈퍼비렌스’도 자주 눈에 띈다. 인동꽃보다 꽃송이가 크고 붉은색의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향기는 인동꽃에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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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꽃

인동꽃의 꽃말은 ‘사랑의 인연’ ‘헌신적인 사랑’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우는 강한 생명력과 본초강목에도 등장할 만큼 한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요한 약재로 쓰였던 인동에 어울리는 꽃말이다. 플라보이드, 탄닌, 알카로이드, 사포닌 같은 성분이 함유돼 해열, 해독, 구취 제거에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성질이 차서 소화력이 약하거나 기운이 없는 경우 조심해야 한다. 예전에는 인동을 삶은 물에 목욕도 하고, 술을 담그거나 꽃잎을 따서 말려 차로 마시기도 했는데 그 은은한 향기가 일품이다. 얼마 전, 북한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 순간을 취재하러 간 기자단 만찬 메뉴에 등장한 금은화차가 바로 인동꽃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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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꽃

많은 사람들은 꽃을 보기 위해선 일부러 먼 곳으로 꽃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줄 알지만 추운 겨울을 제외하면 문밖만 나서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게 꽃이다. 너무 바쁘게만 살아서 꽃을 보려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미처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우는 인동꽃 향기와 함께 사랑의 인연을 떠올려 보는 시간은 분명 축복의 시간이자 소소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디즈니 만화 영화 속 주인공 ‘곰돌이 푸우’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 매일 매일이 힘들더라도 잠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꽃을 보는 일, 향기를 맡는 일, 이보다 더 확실한 일상 속의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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