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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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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무궁화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무궁화가 피기 시작했다. 아침산책길에서 무궁화와 마주쳤을 때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란 시가 생각났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로 시작되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로 앉는다/주저앉는다.”로 끝을 맺는 황지우의 시는 지난 시절의 추억과 함께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한 자세로 애국가를 경청해야만 했다. 80년대의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좌절감을 표현한 이 시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별다른 반감을 가지지도 않았던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생각하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아름다운 기억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노래가 이어질 때 화면 가득 펼쳐지던 무궁화의 만개한 모습은 어느 꽃보다도 화려하고 고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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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

아욱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인 무궁화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가슴에 상징처럼 자리 잡은 나라꽃이다. 무궁화(無窮花)는 그 이름처럼 오래 피는 꽃이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피기 시작하여 서리가 내리기 전의 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긴 해도 한 번 핀 꽃이 오래도록 지지 않고 피어 있는 것은 아니다. 꽃 한 송이의 수명은 단 하루뿐이다. 새벽에 피기 시작하여 오후가 되면 오므라들다가 저녁이면 펼쳤던 꽃잎을 도르르 말아 지고 마는 단명한 꽃이다. 그런데도 여름에서 가을까지 무궁화꽃을 볼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꽃을 날마다 피워달기 때문이다. 무궁화 한 그루는 약 100일 동안 약 3000송이의 꽃읖 피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궁화의 종류는 200여종 이상이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품종으로는 꽃잎의 형태에 따라 홑꽃, 반겹꽃, 겹꽃의 3종류로, 꽃잎 색깔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의 3종류로 구분한다.

무궁화의 학명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hibiscus syriacus)로 중동의 시리아가 원산지로 되어 있지만 유구한 세월 이 땅에 살아온 꽃나무다.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자라고 있다는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저술된 동양 최고의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자의 나라에는 사람들이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기를 피하며 견허하고, 그 땅에는 훈화초가 있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는 언급이 있다. 여기에서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킨 것이고, 훈화초는 다름 아닌 무궁화의 한자명이다. 이것만 미루어 보더라도 2000년 넘는 오랜 세월을 이 땅에서 꽃을 피웠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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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

요즘처럼 무덥고 병충해도 많은 혹서기에도 악조건을 이겨내고 꿋꿋이 꽃을 피우는 무궁화는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을 하며 마음을 모았던 꽃이기도 하다. 일제에 의해 수없이 핍박받고 뿌리 채 뽑히어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무궁화를 중심으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모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것을 생각하면 무연히 무궁화꽃을 바라 볼 수 없는데 아직도 무궁화는 법적으로 나라꽃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꽃은 아름답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어도 꽃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은 결코 견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필자의 소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나라꽃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무궁화를 두고 지루한 논쟁을 이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동고동락하면서 마음속에 국화로 자리매김한 무궁화를 하루빨리 나라꽃으로 정했으면 싶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