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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페이스북 (Facebook)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 저커버그 하버드대 친구찾기에서 시작. 지구촌 인구 절반 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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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페이스북 (Facebook)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 저커버그 하버드대 친구찾기에서 시작. 지구촌 인구 절반 포용

[기업분석] 페이스북 (Facebook)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 저커버그 하버드대 친구찾기에서 시작.   지구촌 인구 절반 포용이미지 확대보기
[기업분석] 페이스북 (Facebook)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 저커버그 하버드대 친구찾기에서 시작. 지구촌 인구 절반 포용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또 구설에 올랐다.

이번에는 나치 시절 유대인 학살을 둘러싼 시비다.
사건의 발단은 언론 인터뷰였다.

저커버그는 최군 미국의 정보기술 IT 전문 매체인 리코드와 인터뷰를 했다.

매체 공동창립자 카라 스위셔와 페이스북의 게시물 차단정책과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게시물 삭제 원칙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갖고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이들과 단순히 잘못된 정보를 올리는 이들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갖고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경우에는 게시물을 차단해야 하지만 고의 없이 단순히 잘못된 정보는 차단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저커버그는 그 차이를 보다 더 쉽게 설명한다면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예로 들었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올린 게시물은 의도 없이 부정확한 정보를 올린 경우에 해당하므로 페이스북은 삭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커버그는 유대인이다. 이날도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매우 모욕적이고 불쾌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잘못 알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삭제하지 않는 이유라고 했다.

의도적으로 틀린 정보를 올리지 않는 한 삭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언론과 시민단체를 비롯해 소셜 미디어에서는 난리가 났다.

한 유대인 단체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은 반유대주의자들의 계획적이고 고의적이며 장기간 이어진 기만전술"이라며 "페이스북은 이러한 주장이 전파되는 것을 막아야 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회원 탈퇴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섣부른 말 한마디가 재앙을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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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의 풀 네임은 마크 엘리엇 저커버그다. 영어로는 Mark Elliot Zuckerberg로 쓴다.

1984년 5월14일 태어났다. 올해 34세다.

미국의 프로그래머 및 인터넷 사업가로 페이스북을 설립했다.

지금도 페이스북의 CEO로 활동 중이다.

저커버그는 미국 뉴욕 주 화이트플레인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워드(Edward)는 치과 의사였다. 어머니 캐런(Karen)은 정신과 의사였다. 부모가 모두 의사였다.

어릴 때는 주로 뉴욕 주 돕스페리에서 자랐다.

태어날 때부터 유대교 교육을 받았다. 13세 때는 유대교 성인식의 일종인 바르와미츠바를 치렀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밝히고 있다.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아버지로부터 아타리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으며, 1995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데이비드 뉴먼(David Newman)으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았다.

아즐리 고등학교 때 서양고전학(classics) 과목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2002년 9월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및 심리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클럽 활동으로는 알파 엡실론 파이라는 유대인 학생 클럽에 가입했다.

하버드 2학년 때 한 사교 파티에서 중국계 여학생 프리실라 챈(Priscilla Chan)을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다. 2010년 5월19일 둘은 깜짝 결혼을 했다.

저커버그는 적록색약이다. 파란색을 가장 잘 인식한다.

파란색을 페이스북의 주 색상으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2학년 학생이던 2003년 10월28일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이름으로 SNS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4년 2월4일에 "더페이스북" (TheFaceBook)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열었다. 2004년 6월 캘리포니아 주의 팰러앨토로 회사를 옮겼다.

그 즈음 페이팔의 공동 창립자 피터 틸로부터 첫 투자를 받았다.

2005년 thefacebook.com 이라는 도메인을 20만달러에 구매했다. 거기서 the를 빼어 지금의 이름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페이스북은 처음에 하버드대 학생들에게만 허용되었다. 조금 지나 스탠퍼드, 컬럼비아, 예일 등 아이비리그 대 학생 전체로 대상을 넓혔다.

2005년 9월에는 고등학교에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그러다가 2006년 9월에는 13세 이상의 전자 우편 주소를 가진 사용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했다,

페이스북은 2006년 야후로부터 10억달러에 인수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벤처 캐피털로부터 2억5000만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

2015년 12월2일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으로 딸의 출산 소식을 알리며 딸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는 그들 부부가 ‘첸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라는 자선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지분 중 99%를 첸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중 하나다

페이스북의 월 활동 사용자는 20억명, 하루 활동 사용자는 10억명을 넘는다.

전 세계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인구의 절반 가량이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은 학기 초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서로를 알아가라고 주는 책에서 비롯됐다.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