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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은산분리 완화, 충분한 토론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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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은산분리 완화, 충분한 토론이 먼저다

금융증권부 석지헌 기자.
금융증권부 석지헌 기자.
[글로벌이코노믹 석지헌 기자]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 처리가 8월 임시국회 내 어렵게 됐다. 여야가 규제 범위를 두고 대치하는 가운데 은산분리 완화 필요성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없어 아쉽다. 경제논리 없이 정치공방만 난무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간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는 많았지만 좀처럼 진전될 기미도 없었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촉구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문 대통령은 ICT(정보통신기술)혁신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진보진영 학자들과 시민단체의 반박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들은 은산분리 완화가 기술혁신과 일자리 창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먼저 ICT혁신 활성화를 보자. 은행의 본질은 수익성이다. 인터넷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예금과 대출에서 오는 이자이익에서 수익을 얻는다. 인터넷은행이 IT기업과 만난다고 해서 '혁신적'인 금융상품과 서비스로 수익 구조가 바뀔 것이란 발상은 그저 생각에 지나치다.

현재 600만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뱅크는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일반 시중은행과 기술적 측면에서 크게 앞선 모습은 없어 보인다. 매끄러운 UI/UX로 쉬운 예금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이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ICT 기술혁신과는 거리가 있다. 인터넷은행 계좌를 만드려는 타 시중은행 계좌에서 1원을 송금해야 하는 식이다. 낮은 송금·이체 수수료도 기술혁신으로 사회적 비용이 절감된 게 아니다. 인터넷은행이 수수료 부담을 대신 지고 있는거다. 빅데이터 활용과 블록체인 기술 등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기존 은행의 IT투자 촉진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터넷은행이 고용 창출에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미약하다. 진정한 고용 창출을 노린다면 오프라인 은행을 만드는 게 낫다. 인터넷은행은 영업점이 없어 투자 규모가 작다. 케이뱅크 직원 수만 봐도 대략 300명으로 창구가 없는 인터넷은행의 특성상 고용창출효과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고용효과는 제로(0)다.

올 1분기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각각 188억4300만원, 53억34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여타 시중은행들이 같은 시기 사상 최대 이익을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터넷은행 특혜 인가 의혹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익 측면에서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자, 이를 면피하려는 시도로 급히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은산분리 규제가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사회의 여건이 바뀌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에서 합당하고 충분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은산분리가 정말 필요한지, 왜 필요한지부터 논의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석지헌 기자 cak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