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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사실감(史實感)을 확장한 울림과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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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사실감(史實感)을 확장한 울림과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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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열정과 질투로 끓어올라 핏빛 서사를 간직한 고성(古城)엔 침묵이 흘렀다. 선율과 소리가 흐르자 성(城)은 선홍으로 타올라 현장으로 다가왔다. 베토벤의 이글거리는 분노와 겁에 질린 카알의 공포가 현실이 되었다. 깃발처럼 나부끼던 춤이 회오리로 변하고, 바람이 되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고, 칠흙 같은 어둠이 거리에 내려앉자, 느린 바이올린에 걸린 검붉은 열정이 솟구쳤다. 파도를 잠재우는 것은 죽음이어야 했다. 총성이 울렸다. 이 서사를 새롭게 써내는 자들은 아름다운 뜻을 같이한 예술가들이었다.

2018년 8월 24일(금) 20시, 25(토) 17시 성남아트센터 앙상블 극장에서 성남문화재단이 주최하는 2018 성남아트센터 <마스터즈 시리즈 Ⅳ>에 최성옥(충남대 무용학과 교수) 안무, 오토 브루사티(Otto Brusatti, 바덴 베토벤 페스티벌의 총감독)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Beethoven & Karl in Seongnam>이 선정되었다. 성남에서 두 차례 공연된 오스트리아와의 공동 작품은 '연극, 현대무용, 바이올린 선율로 느끼는 베토벤'이라는 부제어가 붙어있다. 극성 조율의 무용이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펼쳐짐을 밝히는 공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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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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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오스트리아 '2018 바덴 베토벤 페스티벌'이 주목한 폐막작이었던 <베토벤과 카알>은 전위적 갈래의 예술적 가치를 고양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베토벤의 삶을 재발견해낸 한국 초연작의 세 축은 베토벤 역과 나레이션을 맡은 바리톤 성량의 연극배우 베른하르트 마이첸(Bernhard Majcen)의 두드러진 연기, 메타댄스프로젝트(예술총감독 최성옥)의 놀라운 춤 표현력, '죽음의 여신' 역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안토니아 랑커스베르거(Antonia Rankersberger)의 연주다. 주조적으로 깔리는 베토벤 음악은 여린 감정선을 파고 든다.

베토벤은 음악성 숭상과 인간성 상실의 다면적 대상 인물이다. 거대한 음악 창작과 달리 현실 부적응의 예술가는 지탄의 대상이 된다. 명확한 것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베토벤의 한계에 감히 도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1994)은 베토벤의 내밀하고 아픈 사랑의 이야기, <댄싱 베토벤, Dancing Beethoven, 2016>은 평화를 갈구하는 베토벤의 이상, 신종철 안무의 현대무용 <휴먼 프로젝트 ‘NO.9’, Human Project ‘NO.9’>(2018)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창작의 고뇌를 그려낸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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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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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성남에서 공연된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은 연출가 오토 브루사티가 베토벤과 그의 음악을 중심에 두고, 조카 카알에 대한 편집광적인 집착과 테러에 가까운 갈등, 베토벤의 비도덕적 편협을 정면으로 부각시킴으로써 극성을 강조한다. 1부에서 사용된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9번 D단조 2/4박자, 바그너의 발퀴레 1막, 베토벤의 장엄 미사곡 제2장 '글로리아', 바이올린 연주는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스,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4번이 울림의 조화를 이룬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은 사실감을 확보한다.

스믈 다섯 개의 상황 대사들을 떠받히고 있는 것은 메타댄스프로젝트 무용단(김선주/카알의 또 다른 자아, 정진아/조카 카알, 홍정아/죽음의 여신, 강윤찬/루돌프 대공, 손주용/카알의 또 다른 자아, 군무진(무용단+김성정, 김지은=어둠의 그림자)의 역무(力舞)다. 1부의 대사 16개, 2부의 대사는 9개, 보통 서 너 개의 짧막한 개념어로 구성된 각각의 대사들은 하나의 신을 이루면서 음악사의 시대적 상황과 당시의 분위기를 해설해 낸다. 극의 전개에 따라 실핏줄처럼 상황을 연기해내는 춤은 고도의 진지성을 견지하고 있었다.

2부에 들어서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31번 올림 다단조의 첫 악장이 연주된다. 카알을 받아준 연대장에게 헌정되는 위대하고 심오한 곡이다. 해설자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말을 빌려 '음으로 표현된 것 중 가장 무거운, 마치 긴 하루 동안 하나의 소원도 성취되어서는 안 될 운명의 날 아침에 눈을 뜬 것과 비교되는 곡'이라는 말을 전한다. "동시에 속죄의 기도, 영원한 선을 믿으며 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곡인가?"하며 반문한다. 2부에서 사용된 현악사중주 131번 1악장부터 7악장, 14번은 춤과 대사에 적절히 용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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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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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시종을 압도하는 역동적이고 표현성이 두드러진 <베토벤과 카알>은 조카 카알의 자살 기도와 베토벤과의 불화를 재해석하여 일상에 걸친 베토벤의 후반부 삶에 대한 음악적 저변을 탐색한다. 음악계에서 존경받고 범접하기 어려운 작곡가가 귀머거리가 되어 가면서 보인 추한 모습은 호기심의 근원이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음악 연출가인 오토 브루사티는 베토벤과 카알 사이의 가족 갈등을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베토벤의 조카에 대한 지나친 집착, 중압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카알의 방황과 고뇌, 죽음을 다룬다.

안무가 최성옥은 카알과 베토벤의 마지막 후원자 루돌프의 넋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안무를 구성한다. 실제 사건 현장인 바덴의 고성을 배경으로 한 야외무대의 초연을 실내로 들여온다. 보다 더 형식화된 춤은 옹골진 대사의 맛을 음미하도록 보강된 무용수, 완전한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과 자막, 시각적 무대장치 등이 동원되어 리듬예술의 묘미를 살린다. 실화에서 움직임을 추출하기 위한 텍스트 활용, 베토벤 음악 분석을 통해 추상적이지만 타 장르와의 조화를 위해 역할에 벗어나지 않은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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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베토벤과 카알 in 성남'

1815년 11월부터 1826년 7월에 이르는 파국은 극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도덕율 답습을 간섭・지시하면서 아홉 살의 조카를 어미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베토벤의 계략, 당대의 최고 스캔들이 된 카알의 자살시도, 보헤미아 연대로 보내진 조카, 베토벤의 죽음 등은 예술적 수사를 덜어내고도 베토벤의 후반기 자체는 극적이다. 시장 가치가 있는 '메타댄스' 춤 연기자들의 현란한 수사는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로 바뀌고, 마무리될 때 까지 빛을 발한다. 2부가 시작되면 2악장은 노자・장자의 세계와 닮아있다.

보통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신성이 산다, 세상은 거친 레시터티브와 여덟 개 변주곡 같다. ‘메타댄스프로젝트’는 한국 현대무용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면서 타 단체와 비교되지 않는 다양하고, 크고 작은 공연들을 수행해왔다. <베토벤과 카알>은 젊고 활기찬 에너지로 작전 같은 유니크한 정열을 이어갔다. 현대무용의 국제화와 국제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메타댄스'의 이번 공연 보여준 모습은 희망적이다. 잘 짜인 성벽이 된 춤은 성남에서의 <베토벤과 카알>은 빛나게 있었고,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글 장석용 그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옥상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