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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계림(桂林) 유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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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계림(桂林) 유람기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추석연휴기간 중국 광서장족 자치구 북동쪽에 있는 계림을 찾았다. 어딜 가나 계수나무가 늘어서 있는데 도심만 벗어나면 무협영화에서나 등장했던 비경이 펼쳐졌다. 이강을 끼고 유람할 때 강변가로 병풍처럼 펼쳐진 둥근 산세는 어깨동무를 하고 겹쳐지며 끝없이 이어져서 자욱하고 아득했다. 땅속의 별천지도 그에 못지않게 기기묘묘했다. 관광 필수코스인 관음동굴이나 은자암동굴에는 형형색색의 종유석이 영겁의 세월을 드러내며 천정에서 각양각색의 모양을 뽐내고 있었다. 계림의 하늘과 물과 땅은 도연명의 무릉도원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곳에 일년에 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선경에 맞물려있는 인간의 드라마다.

계림에서는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 일단 어부는 가마우지를 굶긴 뒤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목을 조이고 발에 줄을 달아 강물에 던진다. 배고픈 가마우지는 고기를 낚지만 목이 졸려 삼키지 못하고 어부가 당기는 줄을 따라 돌아오게 된다. 어부는 가마우지의 주둥이에 손을 넣어 고기를 끄집어 낸다. 충분히 잡으면 가마우지의 조인 목을 풀어주고 고기를 먹게 해준다는 것이다. 잔인하다고? 우리가 기르는 가축의 흑역사를 생각해보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 즈음 가이드가 들려준 이야기는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평생 가마우지와 생업을 같이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수명을 다해 죽음 앞에선 가마우지를 보듬고 장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새를 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함이었다. 할아버지와 가마우지는 서로 눈을 쳐다보며 침묵으로 교감했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가마우지에게 토속주를 취할 만큼 마시게 했다. 기력이 다해 고개를 떨어뜨린 가마우지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할아버지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는 이야기다.
아름답지 않은가? 계림 곳곳에서 가마우지를 양 어깨에 올려놓고 다니는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자주 목격되었다. 생계유지를 위한 비정함이 평생을 함께 나눈 인간과 동물의 우정史로 탈바꿈된 탓이리라.

이튿날 계림에서 한 시간 남짓 양삭으로 달려갔다. 계림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이곳으로 몰려드는데 장예모감독이 연출한 “인상유삼저”라는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이 공연은 이강과 주변12개의 산봉우리가 무대다. 이 쇼에는 무려 660명이 출연하는데 강변 5개 마을의 어민과 연극전공의 그 지역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이 공연 하나로 양삭의 부락민 전체가 먹고 산다고 한다. 공연의 내용은 '유삼저(劉三姐)설화'를 바탕으로 장족(壯族)과 묘족(苗族) 등 소수민족의 문화를 가미한 것으로 유씨네 셋째 딸이 지주들의 유혹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목동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유소저가 강의 수면위로 솟아오른 달 위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선사하는 몽환적인 장면이었는데 공연 초기에는 전라의 공연이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소수민족의 언어를 무대에서 그대로 사용해서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아쉬웠으나 자연에 묻혀 사는 사람들의 선량하고 질박한 삶의 이야기가 그대로 몸으로 전해져 왔다. 이 ‘인상’시리즈는 애초부터 정부의 지원으로 제작해서 4편이 더 만들어져 중국 각지에서 연중 무대에 올려지는데 모두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민담들이다.

취두부 냄새는 진저리 났고 기름진 음식은 장염을 불러 고생이었다. 하지만 계림은 아름다웠다. 평생을 동고동락한 어부와 가마우지의 우정, 그리고 돈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한 시골 여인네의 사랑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기억되리라.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커피와 수제맥주와 장칼국수의 도시 강릉에 우리네 삶과 맞닿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애환은 진작 없었을 것인가. 용눈이오름에 스며든 김영갑의 예술혼처럼 제주의 수많은 오름마다 사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문득 유시민 선생이 “역사의 역사”에서 역사가란 역사적 사실들간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한 대목이 떠올랐다. 서사의 힘을 말한 것이리라. 이야기는 풍경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을 불러 모은다.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말도 있다. 그들이 유씨네 셋째 딸로 떼돈을 벌고 있다면 우리도 최진사댁 셋째 딸로 뭘 좀 어떻게 해야하지 않을까.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