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향기] 악마의 나팔, 천사의 나팔 -흰독말풀

기사입력 : 2018-10-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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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며칠 전 어린이집 앞을 지날 때였다. 유치원 꼬마 서넛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더니 순백의 종이로 만든 듯한 꽃을 신기한 듯 만져도 보고 향기도 맡아보곤 하는 것이었다. 도도하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바짝 치켜든 채 활짝 피어 있는 꽃은 악마의 나팔(devil's trumpet)로 불리는 흰독말풀 꽃이었다. 아이들에게 '이 꽃은 악마의 나팔이란 별명을 가진 흰독말풀 꽃이란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왔다.

흰독말풀 꽃을 볼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20세기 미국의 가장 독창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꽃과 사막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을 떠올리곤 한다. 그녀는 수많은 꽃을 그렸지만 그 중에도 유독 흰독말풀을 많이 그렸다. 그 중에도 201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495억원에 팔려 여성화가의 작품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도 다름 아닌 이 '흰독말풀'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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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 작 '흰독말풀' 꽃.

자연이야말로 세상의 광활함과 경이로움을 가장 잘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던 화가 조지아 오키프. 누군가가 내게 꽃을 보는 이유에 물어오면 "나는 내가 본 것, 다시 말해 꽃이 나에게 의미하는 바를 그릴 것이다. 나는 그것을 크게 묘사함으로써, 꽃을 구경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울 것이다. 심지어 나는 바쁜 뉴요커들조차 내가 꽃을 통해 본 것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게 만들 것이다."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바쁜 일상 때문에 주변의 꽃들조차 바라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보고 느낀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글을 통해서라도 함께 나누고 싶은 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흰독말풀은 원래 열대 아시아가 고향인 귀화식물이다. 독말풀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독을 정제하여 약으로 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줄기는 곧게 서고, 키는 1m 정도까지 자라며 가지가 갈라진다. 꽃은 백색으로 6∼9월에 걸쳐 피는데 잎겨드랑이에 1개씩 달린다. 모양은 커다란 깔때기나 나팔과 비슷하다. 꽃받침은 길이 4.5㎝로 긴 통형이며 끝이 5개로 얕게 갈라져서 퍼지며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다. 열매는 삭과(殼果)로 둥글고 지름 2.5㎝이며, 가시 같은 돌기가 촘촘하게 돋아 있고 불규칙하게 터져서 깨 같은 흰 종자가 나온다. 잎을 만다라엽(曼陀羅葉)이라고 하며 천식·진통 및 진해제로 사용하지만 맹렬한 독이 있다. 질긴 생명력으로 야생에 적응했지만 독말풀과 흰독말풀은 한해살이풀로 겨울을 나지 못한다. 반면에 '털독말풀'은 강한 생명력으로 잎은 시들어도 뿌리로 겨울을 나는 여러해살이풀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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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독말풀 꽃.

'악마의나팔'이란 별명을 가진 독말풀은 '흰독말풀' 외에도 '독말풀', '털독말풀'이 있다. 이와 비슷한 꽃으로 '천사의나팔'이 정식 우리나라 꽃 이름으로 등재된 '엔젤트럼펫'이 있다. 이 식물들은 여름부터 개화하지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서늘해지기 시작한 요즘이다. 커다란 나팔 모양의 꽃이 멀리서도 쉽게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천사의나팔'은 이름 때문인지 유독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집에서도 많이 키운다. '천사의나팔'은 한해살이풀인 독말풀과는 달리 열대성 상록관목인 어엿한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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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팔

'천사의나팔'과 '악마의나팔'로 불리는 독말풀이 확연히 다른 것은 꽃이 피는 방향이다. '천사의나팔'은 지면을 향해 다소곳이 피는데 반해 '악마의나팔'이란 별칭을 가진 독말풀은 그 큰 꽃송이를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세우고 피어난다. 어쩌면 그 꼿꼿함이 서양 사람들 눈에는 하느님과 맞서려는 교만함으로 비춰져 '악마의나팔'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같은 꽃이라도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과 의식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세상의 모든 꽃은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의 렌즈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선한 마음과 아름다운 시선을 간직한 사람만이 꽃만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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