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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교육부의 교육철학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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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교육부의 교육철학 빈곤

노정용 부국장
노정용 부국장
교육부가 또 다시 갈팡질팡하고 있다. 얼마 전 교육부는 대입제도 개편을 국가교육회의에 책임을 떠넘겨 수십 억원의 예산만 낭비한 채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회가 '선택 어려움'을 확인한 게 수확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불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의 기존 방침을 뒤집고 "유치원 영어 방과 후 수업을 허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혼선을 빚게 됐다.
현재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 후 수업은 공교육정상화법(일명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지난 3월부터 금지된 상태다.

그런데 유은혜 장관이 취임한 지 며칠 만에 유치원 영어 방과 후 수업을 허용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유치원생은 배워도 되고, 초등 1~2학년생은 못 배우는 '이상한 영어 교육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어 수업 논란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이 조기영어교육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면 교육 현장은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영어 조기교육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조기교육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바로 언어를 매개로 한 '얼'의 습득이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의를 거쳐 조기 영어교육을 실시할지, 아니면 몇 살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지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육부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그것은 조기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철학의 문제다.

교육부가 인재를 양성하는 100년의 계획에 따라 확고한 교육철학이 있다면 영어교육은 언제 시작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행히도 교육부엔 우리 국민이 모두 공감할만한 교육철학이 없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억압부터 먼저 하려고 한다. 교육 당사자인 학생이나 학부모를 배려하는 점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행정편의를 위해 법을 정하고 강제하는 것이 전부다.

교육부는 지난 2014년 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되자 초등 1~2학년 영어 방과 후 수업을 금지하려 했다가 "비싼 학원에 가란 말이냐"는 학부모 반발에 한발 물러섰다. 사실 영어 정규교육이 3학년 때 시작하기 때문에 1~2학년 때 영어를 방과 후에 배우는 것은 엄연히 말해 '선행 학습'에 해당하므로 불법이다. 그러나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를 가르치던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혀 정부는 영어 방과 후 수업만 올 2월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유치원 영어 방과 후 수업 허용 방침을 밝힘으로써 유치원은 되고, 초등학교는 안 되는 스스로의 모순을 낳았다. 교육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 장관 자리는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기획재정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에게만 부총리라는 직책을 부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1년 후 총선에 나갈 의사를 내비쳤다. 1년 동안 얽히고설킨 교육난제를 풀기에는 역부족이다. 1년 정도 교육부 장관직을 수행하다가 그만둘 사람이 얼마나 애정을 갖고 교육정책을 수행할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유은혜 장관은 한국의 교육을 위해 한몸 바치겠다는 각오로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아가야 한다. 그러한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뒷짐지고 있는 편이 더 낫다.

더 이상 한국의 교육정책이 조삼모사 식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예측 가능하도록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추진되어야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어 교육 정책도 영어 교육 환경 변화, 교육 프로그램과 교사 전문성 등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고 정해야 한다.


노정용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