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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꽃은 어디에 피어도 어여쁘다 -서양등골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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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꽃은 어디에 피어도 어여쁘다 -서양등골나물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지난 달 남산에선 우리 식물들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환경단체의 행사가 열렸다는 뉴스가 있었다. 억척스런 생명력으로 토종 생태계를 위협하며 무섭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귀화식물 중의 하나인 ‘서양등골나물’을 제거하는 행사였다. 우리 꽃들의 등골을 빼먹는 풀이라서 서양등골나물이란 이름이 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름치곤 그리 정감이 가지 않는 이름임엔 분명하다. 토종식물들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귀화식물이 반갑지 않은 존재임엔 틀림없지만 그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들을 이 땅에 옮겨온 것은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빈번해진 인적 교류 속에 식물들의 이동도 함께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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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등골나물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목되어 사람들의 손에 무참히 뽑혀나가는 서양등골나물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오래 전 책에서 읽은 미국의 목조가옥을 쓰러뜨린 흰개미 일화가 생각났다. 세계2차대전이 끝났을 때 필리핀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은 귀국을 하기 위해 짐을 꾸렸다. 미군들의 짐은 필리핀 현지에서 제작된 나무 상자에 담겨 미국으로 옮겨졌고, 귀국한 미군들은 짐을 풀어 빈 나무상자들을 기지의 한 쪽 구석에 버린 채 집으로 갔다. 하지만 기지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나무 상자 속에 흰개미들이 따라왔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 개미들이 머지않아 목조가옥을 마구 쓰러뜨리는 골치 아픈 존재가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서양등골나물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길가나 숲의 개활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1978년 서울 남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짐작키로는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의 신발이나 여행가방에 묻혀 옮겨진 게 아닌가 싶다. 발견 당시엔 서울 남산과 워커힐 언덕에서 한두 포기 보일 정도였던 것이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기존 생태계를 위협하며 그 세력을 수도권까지 확장한 상태다.

서양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

처음 서양등골나물을 발견한 이우철 박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양등골나물은 토양이 척박하고 생태계가 파괴된 곳에서 쉽게 퍼지며 토양조건이 좋아지면 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귀화식물이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와서 저절로 씨 뿌리고 나고 자라 꽃 피우는 식물을 말한다. 대부분의 귀화식물들은 광선요구량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손대지 않고 잘 보존된 안정된 생태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늘진 숲속에서도 잘 자라는 서양등골나물을 비롯하여 14종의 식물들은 억척스런 생명력 덕분에 생태계 교란종으로 낙인이 찍혔다. 돼지풀, 털물참새피, 도깨비가지, 가시박, 애기수영,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등이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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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등골나물

해마다 서울에 가을이 오면 서양등골나물은 공터와 산지 곳곳을 순백의 꽃으로 가득 채운다. 꽃은 어디에 피어도 아름답다. 사람들이 생태계 교란 식물로 손가락질 하든 말든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해마다 그 자리에 꽃을 피우고, 꺾이고 뽑혀도 보란 듯이 다시 피어난다. 숲 그늘에 무리 지어 핀 서양등골나물 꽃을 보면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양등골나물의 꽃말은 '주저' '망설임'이다. 이 땅에 뿌리 내리고 꽃 피우기까지 얼마나 주저하고 망설였으면 그런 꽃말을 가졌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공연히 꽃에게 미안해진다. 우리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쓰레기를 배출하는 지구 최대의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 아니던가.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