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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도 외양간 방치하는 정부'…'종로 고시원 화재' 등 계속되는 참사에 불안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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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도 외양간 방치하는 정부'…'종로 고시원 화재' 등 계속되는 참사에 불안감 고조

지난 9일 화재 사고가 발생한 고시원 앞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9일 화재 사고가 발생한 고시원 앞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윤진웅 기자] 지난 9일 5시경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위치한 국일 고시원 3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은 301호 거주자 A씨의 진술에 따라 실화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 하고 있다. A씨는 "(사고 당일 새벽) 전기난로를 켜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방에 불이 나 이불로 끄려다가 오히려 더 크게 번져 탈출했다"고 진술했다. 앞서 경찰은 A씨에 대한 1차 조사를 마친 상태다.

사고 이후 당국은 생존자들에 대한 임시거처 마련 방안을 내놨다. 또, 서울시는 오는 15일부터 내년 2월까지 고시원과 소규모 건축물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을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당국의 행보에 대해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소방청 화재통계 현황에 보면 올해 화재 사망자 306명 중 96명이 고시원, 쪽방, 여인숙 등 비주택에서 사망했다. 계속되는 사고 소식에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대책 마련은 유야무야 넘어가기 일쑤였다.

지난 6년간 다중이용시설에서 일어난 화재사고 3000여 건 가운데 252건(8.3%)은 고시원에서 발생했다.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법적 안정성을 따르다 사고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이에 오래된 건물이라도 새로 바뀐 소방 규정을 지키도록 소급 적용을 해야 한다는 항의가 있었지만 추진되지 않았다. 비용과 수입이 대한 건물주의 반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노후 건물에 화재보험료를 높게 책정하는 방식 등으로 건물 관리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다른 고시원에서 일어난 사고만 보아도 이번 사고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2월과 6월 경기도 파주와 서울 용산 고시원 화재는 10여 분 만에 진화됐고 지난달 13일과 21일 부산과 경기도 고양의 고시원 화재도 초기 진화에 성공하며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다. 모두 스프링클러가 즉각 작동했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 2008년 10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고시원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없어 결국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고시원과 같은 취약시설에서 스프링클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프링클러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지난 2009년 개정된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고시원이나 목욕탕·산후조리원 같은 다중이용업소는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고시원은 2007년 문을 열었다는 이유로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를 놓고 안전을 위한 법안이 시기에 따라 적용 대상을 달리하는 것은 안전 불감증이 아닌 ‘방치’라는 비난이 나왔다.
또한 정부의 안전불감증은 해당 고시원이 지난 5월 15일 정기 특별화재조사에서 ‘양호’ 판정을 받으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이 고시원 2층에는 자동확산소화기 없이 취사시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일반적으로 취사가 이뤄지는 일반 가정집과 식당 등 화기설치 업소는 천장 등에 자동확산소화기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건물은 기본 소화설비와 경보설비, 피난시설(완강기·비상구) 점검이 전부였다.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닌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올해 기준 전국에 등록된 고시원은 총 1만1892개소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가 일어난 고시원과 같은 2009년 이전 영업을 실시한 미등록 시설이 아직도 상당 수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들 시설 역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한폭탄을 껴안고 있는 꼴이다.

뿐만 아니라 사고가 일어난 국일고시원은 1992년 7월 개정된 소방법 시행에 따라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해야 했지만 소방당국도 따로 관리자를 명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를 지키지 않은 건물주가 최근 비소 검출로 논란이 일었던 백신 수입사의 회장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한편으론 이와 같이 이슈가 겹쳐야만 관심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 우려도 나온다.

또다른 화재의 원인으로 임대수익을 늘리기 위한 수법인 ‘방 쪼개기’가 지목됐다. 수도권과 광역시에서 적발된 원룸·고시원 불법 방 쪼개기는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19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 쪼개기는 환기시설과 대피로를 축소해 또다른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내화구조가 아닌 석고보드로 마감한 내벽은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역시도 이렇다 할 대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매번 정부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시기를 놓쳐 대책을 내놓기에 바빴다. 지난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참사의 주요인으로 지적된 샌드위치 패널이 지난 8월까지도 화재를 발생시켜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 무려 19년을 방치한 셈이다.

앞으로 정부가 내놓는 안전 대책이 비판의 목소리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유명무실한 대책이 아닌 철저한 점검을 토대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윤진웅 기자 yjwdigital@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