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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 GM자동차 1만4000명 해고 구조조정… 전기차 자율차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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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 GM자동차 1만4000명 해고 구조조정… 전기차 자율차 승부수

[기업분석]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  GM 자동차  1만 4000명 해고 구조조정…  전기차 자율차 승부수  이미지 확대보기
[기업분석]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 GM 자동차 1만 4000명 해고 구조조정… 전기차 자율차 승부수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자 미국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GM 최고경영자는 여성 CEO로 유명한 메리 배라이다.
메리 바라 CEO 는 27일 구조조정을 선언하면서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등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GM은 그것에 적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구조조정은 경기 하강을 우려한 것이 아니라 GM은 물론 미국 경제가 강한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라 CEO는 특히 미중 무역전쟁으로 전세계가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이번 GM 구조조정과 미중 무역전쟁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GM은 이번 구조조정으로 북미지역에서 5곳과 해외 2곳 등 모두 7곳의 공장 가동 중단에 나선다.

그로인한 인력 감축 규모도 상당하다.

우선 북미에서 1만4000여 명의 인력을 줄인다.
1만40000명 감원은 GM의 글로벌 인력 18만 명의 약 8%에 해당한다.감원 대상은 사무직 8000 여명 미국과 캐나다 공장 생산직 근로자 3300명과 2600명 등 이다.

이 인력 감축 구조조정으로 2019년 말까지 약 6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한다.

그 돈으로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번 구조조정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2009년 GM의 파산 위기 당시이후 최대 규모이다.

GM은 또 내년 이후 미국에서 판매를 중단할 자동차를 생산하는 5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 또는 다른 차종 생산으로 임무를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가동중단 또는 임무 전환 공장에는 디트로이트 햄트램크, 오하이오의 로즈 타운, 캐나다 온타리오의 오샤와 조립공장, 미시간 워런 그리고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변속기 공장등이 들어가 있다.

GM은 이들 3곳의 조립공장에서 생산해온 차량 가운데 쉐보레 크루즈와 캐딜락 CT6, 뷰익 라크로스 등의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다.

GM은 또 한국GM 군산공장을 폐쇄한데 이어 북미지역 외의 다른 2개의 해외공장에 대해 내년 말까지 가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라 CEO는 소프트웨어와 전기 그리고 자율주행차 관련 전문가들을 채용을 계속 늘려가겠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발표이후 미국 뉴욕증시에서 GM 주가는 전날보다 4.79% 올랐다.

GM의 구조조정 계획에 반발이 잇따랐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GM의 공장 가동중단 결정 직후 모든 법적 조치와 단체 교섭권 등을 통해 맞설 것이라고 전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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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 GM 자동차 1만 4000명 해고 구조조정… 전기차 자율차 승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바로 'GM 때리기'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 인터뷰에서 GM의 메리 바라 CEO와 통화했다면서 바라 CEO에게 중국 내 자동차 생산을 멈추고 오하이오에 새 공장을 열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경영학 교과서에는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어록이 있다.

GM이 곧 미국이고 미국이 곧 GM이라는 의미다.

한 기업을 국가와 동격으로 예우해주는 이 같은 파격은 시대의 고금과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일찍이 전례가 없는 일이다.

GM은 적어도 미국에 있어 그만큼 특별한 기업이다.

이 말을 공개석상에서 처음 입에 올린 인물은 찰스 윌슨(Charles E. Wilson)이다.

한국 전이 한 창이던 1952년 초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그를 국방장관 후보로 간택했다.

상원 인준청문회에 나선 찰스 월슨에게 한 의원이 질문을 날렸다.

“GM 출신으로 한평생 GM의 이익만을 추구해온 GM 맨으로 미국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GM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과연 내릴 수 있겠는가”라는 내용의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말이 질문이지 비수와도 같은 공격이었다. 기업인을 한낱 장사꾼으로 치부하면서 그런 인물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국방장관의 자리에 앉힐 수 없다는 여론을 일으켜보려는 고도로 의도된 정치적 노림수였다.

윌슨은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고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다”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GM과 미국의 이익이 하나인 만큼 그것이 서로 다르다는 전제로 한 의원의 질의는 기본 가정부터 잘못되었다며 그에게 역공을 취한 형국이 됐다.

언론들이 그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이후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GM은 국가와 동격이 됐다.

그 당시 미국에서 팔리던 자동차의 절반 이상이 ‘메이드인GM’이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도 GM이 좌지우지했다. GM은 미국을 넘어 세계를 움직이는 슈퍼파워였다.

GM은 듀란트 라는 한 마차업자가 시중의 군소 자동차회사들을 사모아 출범시킨 기업이다.

듀란트는 무리한 과잉투자로 물러났다.

1920년 듀란트 퇴장과 함께 듀폰 가문이 새 주인으로 들어섰다.

듀폰 창업주 이레네 듀폰의 손자인 피엘 듀폰이 JP모건과 손을 잡고 GM의 주식을 사들였다.

듀폰가문은 화약과 폭약으로 큰돈을 벌었다.

돈은 벌었지만 폭약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늘 부담이었다.

그러던 차에 새 성장 동력으로 자동차를 지목하고 GM의 경영권을 확보한 것이다.

듀폰 가문이 인수한 후 GM은 다시 살아났다.

GM에서의 듀폰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독점금지법이 생기면서 재벌의 문어발 경영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듀폰은 어쩔 수 없이 철수했다.

이 후 GM은 지배주주가 없는 다양한 소액주주 연합체제로 바뀐다.

그 소액 주주들이 처음 선택한 최고경영자(CEO)가 ‘알프레드 슬로언’이다.

‘알프레드 슬로언’ 은 미국의 명문 아이브리그 MIT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였다.

알프레드 슬로언은 대학 졸업 후 부품공장을 운영하면서 베어링을 개발했다. ‘알프레드 슬로언’의 베이링은 곧 세계 자동차의 표준이 됐다.

GM이 기술에 반해 슬로언의 회사를 사들이게 된다.

이때 슬로언도 GM맨 으로 옮겨왔다.

슬로언은 CEO로 부임하면서 ‘기술의 GM’을 치고 나왔다.

당시 세계자동차 시장은 포드가 평정하고 있었다. 포드의 ‘T형' 모델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 상황에서 포드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도는 포드보다 더 좋은 성능의 자동차를 생산해내는 것이었다. 기술개발이 필수였다.

포드가 ‘T형’에 안주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자동차회사들이 ‘T형’ 흉내 내기에 골몰하고 있을 때 GM은 오로지 기술에 승부를 걸었다.

‘알프레드 슬로언’ 은 연구개발비를 다른 회사보다 10배 이상 많이 투자했다.

그 결과 GM은 전 세계 자동차의 신기술 중 절반 이상을 개척해냈다.

‘알프레드 슬로언’은 기업사상 처음으로 독립 사업부제를 도입했다.

큰 틀에서는 하나의 경영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하며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는 딴 회사처럼 브랜드별로 독자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특색 있는 차를 다양하게 만들어 내기 위한 전략이다.

사업부제 도입 이후 GM의 경쟁력은 몰라보게 높아졌다.

이 독립사업부제를 통해 우수한 자동차 브랜드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스탠더드오일과 제너럴일렉트릭(GE) 그리고 유에스스틸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GM의 사업부제를 모방해 조직을 개편하기에 이른다.

GM의 독립사업부제 경영조직은 이후 거대 재벌을 꾸려가는 이상적 표준으로 부상했다.

1929년 마침내 GM이 포드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후 80년 이상 단 한 번도 선두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2차대전때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탱크와 항공기까지 만들어 연합군 측에 납품했다.

슬로언은 1944년까지 무려 23년 동안 GM의 CEO를 맡았다.

1937년부터는 이사회 의장까지 겸직했다.

1956년 의장직에서 물러나고도 죽을 때까지 명예회장을 맡았다.

대공황과 2차 대전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개발 등 격동의 현대사를 헤쳐가면서 GM 신화를 만들어나갔다.


김대호 소장 /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