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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갈라파고스 규제' 그 달콤한 유혹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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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갈라파고스 규제' 그 달콤한 유혹 벗어나야

[글로벌이코노믹 김민구 기자] 규제의 달콤한 유혹은 때로는 독약이다. 특히 경제정책이 근시안적인 인기 영합주의에 매몰되면 경제에 치명타를 안긴다. 192년 전 있었던 일도 이러한 교훈을 일깨우는 경제사(史)의 한 페이지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 1826년 28인승 증기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등장했다. 증기자동차는 시장을 뒤흔들 ‘블랙스완(Black Swan)' 이었다. 많은 인원을 태우고 시속 30km까지 달릴 수 있는 증기자동차 인기에 그동안 땅 집고 헤엄치던 마부들은 자기 밥그릇을 빼앗길까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
마부들은 증기자동차가 마차를 타는 귀족과 말들을 놀라게 한다는 이유로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부 입김에 못 이겨 영국 의회는 1865년 증기자동차를 규제하는 적기조례(Red Flag Act)를 시행했다.

‘빨간 깃발 법’으로 불리는 이 법규는 마차가 55m 전방에서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가야 했다. 자동차 최고속도는 시속 6.4로 묶어 놨다. 당시 자동차는 시속 30km를 넘게 달릴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적기조례는 자동차 등장에 생존의 위협을 느낀 마차 업주들이 로비를 펼친 대표적인 ‘대못 규제’였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규제의 대가는 참혹했다. 영국 자동차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쇠락의 길을 걸어 세계 자동차산업 주도권은 아우토반을 깔고 질주한 이웃나라 독일로 넘어갔다. 적기조례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술적 진보와 사회적 흐름을 도외시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정책실패(Policy failure)는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되풀이되는 것일까. 정부와 여당이 최근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바라보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약화시키고 대기업 경영 활동을 시시콜콜 관여하는 등 시민단체 요구사항을 그대로 담은 이 개정안은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강한 기업 규제 조항이 포함돼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법이 국제 기준보다 과도하고 선진국 중에서 이런 제도를 법으로 도입한 나라가 거의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내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기업규제법으로 경영 활동이 위축되고 자칫 외국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된다면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오죽하면 외국 경제단체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최근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규제들이 많은 갈라파고스 국가”라며 쓴 소리를 쏟아냈겠는가.

세상과 동떨어진 남태평양의 고도(孤島) 갈라파고스 섬처럼 한국정부 규제가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해묵은 규제사슬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경제가 침체될수록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한국경제호()는 곳곳에 암초처럼 숨어있는 ‘한국판 21세기 적기조례’에 휘둘려 표류하는 모습이다.

규제 인허가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는 시장의 불완전성, 불공정성을 언급하며 시장실패를 막기 위해 정치적 접근과 입법적 제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영국 경제학자 이몬 버틀러(Eamon Butler)는 그의 저서 '시장경제의 법칙'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은 시장 선택보다 비효율적"이라고 꼬집었다. 우리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충고에 '소귀에 경 읽기'처럼 귀를 막고 있을 지도 모른다.




김민구 기자 gentlemin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