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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文章, 조선을 경륜하다'(오세현 지음/나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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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文章, 조선을 경륜하다'(오세현 지음/나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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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글이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

문치국가 고려와 조선시대 선비의 날카로운 문장이 이웃나라의 황제를 감동시키며 위기를 타개하고 국제적 위상을 드높인 것이다. 요즘 글쓰기의 힘을 강조하며 단순히 개인의 문장실력을 뽐내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역사학자 오세현 씨가 펴낸 '文章, 조선을 경륜하다'(나녹)는 문장을 통해 문치(文治)라는 이상이 어떻게 실현됐는지를 실증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의 글쓰기가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한 나라의 사상과 정신을 움직인 핵심가치였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전통적으로 시는 정치 현실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 존재로 개인적 감흥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치도(治道)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 인식되었다"고 말했다.

조선 시대에는 '열 정승이 대제학 한 사람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문장의 영수 대제학이 열 정승을 능가하는 힘을 갖던 문치국가였기 때문이다. 또 젊은 선비들은 문장을 통해 입신하고 문장력을 발휘하며 사회적 가치와 책무를 수행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다음은 문장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현은 고려에서 원에 바치는 은(銀) 조공을 면하게 했으며, 이정구는 문장으로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켜 조선의 위기를 타개하고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다. 조선에서 문치(文治)라는 이상이 결국 문장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저자는 조선 왕조의 부패와 무능에만 초점을 맞추는 일제 식민사관에서 탈피해 조선 시대의 가장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가치를 지녔던 ‘문장’이 조선 시대를 작동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였는지 살펴보고 ‘문장’, 즉 글쓰기의 힘을 재조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글쓰기 방법을 안내하는 글쓰기 특강이 아니라 조선 시대 사상가의 글에 대한 식견과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힘으로써 글쓰기와 관련한 인문학적 소양을 풍성하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 시대 인재 선발의 기준은 경전 공부로 대표되는 도덕적 측면(도학)과 제술을 통해 증명되는 문장이었다. 조선 중기는 문장의 가치와 문장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조선전기 이후로 지속된 시기였다.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진전됨에 따라 그동안 문장의 빛에 가려졌던 도학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롭게 확산되기도 했다.
특히 조선 중기 문장 사대가의 국내외적 문한 활동은 문장이 나라를 빛낸다는 차원을 넘어 문장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로도 전개됐다고 저자는 진단했다. 사대가 모두 성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사대부 사회에서 누구보다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이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문장 사대가는 문장과 도학의 관계에 대해 일정 부분 다른 견해를 보였다. 신흠과 장유가 문장이 지닌 가치와 역할이 사문의 융성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문장의 가치 기준을 도학과의 연관성에 두었다는 차별점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한편 글쓰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단순한 글쓰기의 기법을 넘어 나라를 구하는 경지로까지 승화시킨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