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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모데미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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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모데미풀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올겨울은 눈도 오지 않아 제대로 겨울을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입춘이 코앞이니 봄도 멀지 않았다. 꽃을 찾는 사람들은 정초부터 산과 들을 누비며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깊은 산골짝 얼음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노루귀와 너도바람꽃 같은 여리고 고운 꽃들과의 해후를 꿈꾼다. 가장 여린 것들의 가장 강한 끌림이 주는 감동의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올라온 여린 꽃대 위에 피어난 꽃들을 보면 누구라도 생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로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겨울 빛을 지우지 못한 숲이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서둘러 꽃을 피우고 사라지고 나면 그 뒤를 이어 꽃잎을 여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특별한 꽃이 있다. 다름 아닌 운봉금매화라고도 불리는 모데미풀이다. 전북 남원의 운봉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해발 500m의 고원분지다. 일찍이 조선 중기의 예언서인 '정감록'에서 난리를 피해 살기 좋은 곳으로 꼽은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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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미풀

모데미풀은 고산지역의 습한 곳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종인데 1935년 일본 식물학자 오이 지사부로(大井次三郞)가 운봉면 모데미 마을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데미 마을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모데미란 이름의 마을은 없었다. 모데미란 고유 지명이 아닌 무덤의 일본식 발음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운봉의 무덤이 있는 마을에서 발견된 꽃이 모데미풀인 것이다. '슬픈 추억'이어서 더욱 그렇다.

모데미풀은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토종식물이다.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소백산에 최대 군락지가 있다. 주로 습하고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며 키는 20~40㎝ 정도이며, 잎은 긴 잎자루 끝에서 잎이 세 개로 갈라진 후 다시 2~3개로 뻗어나간다. 봄에 피는 꽃은 줄기 끝에 순백의 꽃잎 다섯 장과 노란 수술을 가진 꽃송이가 달리고 꽃이 지면 서둘러 씨앗을 퍼뜨리고 다른 식물들이 자라기도 전에 한해살이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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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미풀

모데미풀은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소백산 군락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꽃 중 하나다. 워낙에 부지런하고 귀한 탓에 부지런하고 행운이 더해져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꽃이다.

깊은 산속 오염되지 않은 청정계곡의 물가나 비옥한 토양에서만 자라는 지라 꽃에 마음을 두지 않은 사람은 여간해선 모데미풀꽃과 마주치기는 쉽지 않다. 꽃이 귀하고 아름답다 보니 가까이 두고 볼 욕심에 캐어가기도 하지만 키우기가 까다로워 대부분은 실패하고 만다. 야생화는 자연 속에서 보아야 더욱 아름다운 법, 꽃이 보고 싶으면 두 발 가진 우리가 가서 보고 오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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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미풀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초봄의 숲속에서 얼음장 밑을 흐르는 시냇물소리를 들으며 모데미풀꽃과 마주친다면 누구라도 하늘의 별이 내려앉은 듯한 황홀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될 게 틀림없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대부분의 꽃들이 그러하듯 모데미풀 역시 추운 겨울을 견디고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꽃을 피운다. 그러므로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여간한 어려움쯤은 거뜬히 이겨낼 용기를 얻게 된다.

세상에 피는 꽃 치고 어여쁘지 않은 꽃이 없지만 모데미풀은 우리 땅에만 자라는 꽃이라서 더욱 귀하고 어여쁜 꽃이다. 우리가 지켜주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를 귀한 꽃이기에 우리가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보존할 의무가 있다. '슬픈 추억'이라는 모데미풀의 꽃말처럼 추억 속의 꽃이 되지 않도록.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