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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오뚜기, 다시 쓴 라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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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오뚜기, 다시 쓴 라면역사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글로벌이코노믹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그 당시는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비록 고사리손이지만 야무지게 책보를 등허리춤에 잡아매고 산 능선 2개를 넘었다. 겨울엔 특히 산길이 따뜻했다. 신작로길은 눈길 아니면 흙모래바람을 맞기 일쑤였다. 온몸으로 맞은 찬 기운은 아무리 따뜻한 누빔 옷이라도 금세 밑천을 드러냈다. 해어져서 구멍이 난 곳을 또 다시 누벼서 입은 옷이 따뜻할 리 만무했다. 그나마도 없어서 못 입을 때가 있었다. 형제 많은 가정의 막내는 새 옷 구경을 잘 못한다. 서너 번은 돌고 돈 후 그제야 해지고 해진 옷을 챙겨 입는다. 그렇게 해진 옷을 입고 들문악(지역방언: 병목지역)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4km 남짓 되는 등굣길을 매일 왕복했다. 못 입고 못 살던 시절 얘기다.

국민학교까지 왕복 8km나 되는 거리를 이제 갓 한글을 떼기 시작한 여덟 살짜리에게는 고행의 길이었다. 그래도 낙은 있었다. 하굣길에 늘 맛보는 꿀맛. 바로 라면에 스프를 넣어 섞은 다음, 적당히 면발에 달라붙은 스프맛과 함께 으드득 씹어 먹는 맛이다. 삼양라면 한 봉에 10원. 얼마 되지 않아 그 가격은 몇 배로 올라 50원. 각 가정의 형편상 매일 하굣길에 꿀맛을 볼 수는 없었다. 농부의 가정에 딱히 현금이 많지 않아서다. 용돈이란 게 없었다. 그저 등교전, 손바닥이 하늘을 보게 양손을 포개어 부모님께 내미는 게 전부다. 마침 주머니에 동전이 있으면 그날은 용돈을 받았고, 없으면 울면서 학교에 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구들끼리는 꾀를 냈다. 돌아가면서 돈을 받아 삼양라면을 사먹자는 거였다. 그 계획은 성공했다. 다만 어쩌다 본인 차례에 용돈을 못 받아 오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땐 아카시아 꽃을 간식 삼아 미세먼지 잔뜩 묻은 꽃잎 중 그나마 깨끗한 쪽을 입 안에 넣고, 가지는 쑥 뺀다. 그렇게 되면 입 안에 아까시아꽃과 꿀이 어우러져 아주 맛있는 간식이 됐다. 아쉬운 건 아카시아꽃이 사시사철 피지는 않았다.
삼양라면에 대한 추억이다.

삼양라면은 라면업계 역사상 가장 오래됐다. 1960년대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롱런하는 브랜드다. 기름에 튀긴 특유의 바삭함은 당시 간식으로 즐겨 먹었던 이들에겐 여전히 추억의 맛이다. 삼양라면을 만드는 회사가 늘 잘 되길 바란 것은 어렸을 적 침샘골의 추억을 가지고 있어서다. 아직도 삼양라면만 먹는 골수팬들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리는 얼마가지 못했다. 회사 오너가 예전 명성을 뒤로한 채 사리사욕만을 챙겼기 때문이다. 라면업계 1위 자리는 아주 예전에 내줬다. 꼴등까지 내려갔다가 3등으로 살짝 반등했으나, 이제는 또 다시 주저앉았다. 이번에도 오너의 못된 짓이 발등을 찍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횡령했다. 집도 고치고, 외제차도 사고. 못된 짓을 한 회장은 법정 구속됐다. 공교롭게도 삼양식품 전인장(56) 회장이 징역 3년으로 법정 구속될 당시 라면업계에는 이슈가 하나 더 있었다. 오뚜기 '진짜 쫄면'이라는 제품에서 작업용 장갑이 발견된 것이다. 어떻게 완제품 안에 장갑이 들어가 있는지 의문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제조공정상 들어갈 수 없거나, 들어가더라도 이물질 검출 시스템을 통해 걸러졌다. 식품당국의 조사관이 오뚜기 공장에 직접 가서 시험한 결과다.

삼양이나 오뚜기 둘 다 문제는 있어 보이지만, 여론은 엇갈렸다. 삼양식품에는 십자포화를, 오뚜기에는 응원 메시지가 쏟아졌다. 사건의 경중만 봐도 삼양식품이 훨씬 심각했다. 그렇다고 오뚜기가 칭찬 받을 일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은 이례적으로 오뚜기를 싸고 돌았다. '장갑쯤이야 괜찮다'는 초긍정적 반응도 많았다.

라면의 역사가 바뀌고 있다.


조규봉 기자 ckb@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