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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예산안 서명-비상사태 선포 '꼼수'에 민주당 '의회·법정투쟁'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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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예산안 서명-비상사태 선포 '꼼수'에 민주당 '의회·법정투쟁'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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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김경수 편집위원]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둘러싸고 예산안 서명과 국가비상사태 선언 중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 주목받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양쪽을 모두 선택하는 기상천외한 ‘꼼수’를 던졌다. 정부기관이 또 다시 폐쇄되는 것을 회피하고 지지층에도 어필한다는 ‘일석이조’를 겨냥했지만 행정부와 의회의 ‘견제와 균형’관계까지 위협하는 수법에 대해 여당과 공화당으로부터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러한 계획을 관철하기 위해 15일(현지시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예산 편성권한을 쥐고 있는 의회를 통하지 않고 비용확보를 도모하는 이례적 수단으로 야당인 민주당은 국경의 상황이 “비상사태는 아니다”라고 강력반발하면서 의회나 법정투쟁을 통해 저지할 뜻을 분명히 했다. 대립의 격화가 불가피하게 되면서 트럼프가 원하는 장벽건설이 실현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장벽건설을 최대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장벽건설비가 계상되지 않은 연방정부 잠정예산안 서명을 거부하면서 정부기관은 사상 최장 35일간의 일부 폐쇄에 돌입했다. 시민생활과 경제영향이 심화되면서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정부기관 폐쇄를 피해야 한다는 점에선 여당을 포함한 의회 측과 백악관의 기대는 일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야가 이번에 합의한 예산안은 트럼프가 요구한 장벽건설비를 포함한 국경경비비의 4분의 1 정도밖에 계상되지 않았다.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지지층으로부터 큰 양보로 비쳐질 수 있는 ‘리스크’라고 트럼프는 인식하고 있다. 서명의향을 밝힌 이후 친정부 매체인 FOX뉴스와 보수논객들로부터 예산안을 ‘쓰레기’ ‘미국인의 모욕’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제일주의의 상징’인 장벽건설은 여전히 지지층의 인기가 높은 정책이다. 지난 11일 남부 텍사스 주에서 열린 올해 첫 지지자집회에서 연단에 올라선 트럼프의 뒤에 걸린 대형 플래카드에는 ‘장벽을 완성하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이번 비상사태 선언 강행의 배경에는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재선을 노려 ‘공약을 실천하는 대통령’으로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목적이 있다.

하지만 핵심지지층에서는 인기 높은 장벽건설이지만 여론조사에서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정권의 배타주의적인 정책을 경원하는 무당파 층뿐만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의 이반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공화당은 그동안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반대하는 자세를 취해왔지만 결국 용인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지난 2014년에 불법이민구제를 위해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려고 한 오바마 대통령(당시)을 “헌법파괴를 허락하지 말라”고 비판한 트럼프의 트윗이 확산되면서, 이번엔 되레 헌법파괴의 당사자가 된 트럼프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묻는 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논설기사는 트럼프 정권은 새로운 제정 단계에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향후 야당인 민주당이 지배하는 하원이 비상사태 선언을 ‘무효’라고 하는 결의안을 가결할 경우, 상원은 18일 이내에 표결을 해야 한다.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에서도 찬성으로 돌아서는 이반표가 나와 통과될 경우 트럼프는 거부권 발동으로 결의의 효력을 막을 수 있다.

트럼프의 결정에 대해 공화당으로부터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멕시코 국경에서 불법 이민 유입을 비상사태로 선언하는 것 자체에 이견이 있는 데다, 대통령 권한확대를 조장한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화당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번을 선례로 장차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지구온난화 대책 등 당 우선과제의 관철을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의회를 회피해 예산을 확보하는 시나리오다.

민주당 소속의 펠로시 하원의장은 기자회견에서 “14일이 남부 플로리다 주의 고교총기난사 사건 발생 1년에 해당한다”고 언급하며 “(계속되는 총기난사는) 국가비상사태인데 대통령은 왜 선언하지 않느냐”며 총기규제로도 선언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국가비상사태법은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함으로써 대규모 테러 등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헌법상 예산결정권은 연방의회에 있지만 긴급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인 지출결정권을 행정부에 허용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공화당 폴 상원의원은 미국 언론에 “헌법은 권력의 분립을 규정하고 있다. 세출을 결정하는 권한은 의회에 주어지고 있다”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동료인 콜린스 상원의원도 “(장벽 건설은) 국가비상사태법이 상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나온 사례 등 현재 31건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효력이 있다. 대부분은 이란 등 미국과 적대하는 국가나 극심한 인권침해가 지적된 국가에 제재를 가하기 위해서 선언된 것이다. 트럼프도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 앞서 외국세력이 선거에 개입할 경우 즉각 제재를 가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장벽건설에 대해 정권 측은 군사시설 건설을 위한 국방부 예산이나 대규모 재해의 예비비를 충당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예일대학 대학원의 아커만 교수는 미 신문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대통령이 국내법을 수행하는 데 군을 위헌으로 해 온 것이 미국헌법의 전통이다”라고 위법성이 높다고 견해를 나타냈다.

신문에 따르면 2020년 대통령선거에 도전하고 있는 민주당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 카밀라 해리스 등은 장벽건설에 재난대책 예산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김경수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