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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외롭지만 당당한 홀아비꽃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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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외롭지만 당당한 홀아비꽃대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요즘 TV에선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TV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지난 2017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1인 가구가 28.6%로 전체 가구의 4분의 1을 넘는 비율이라고 한다. 1인 가구가 생겨난 까닭을 일일이 알아볼 수는 없으나 평소 '들꽃은 모여 필 때가 더 아름답다'고 굳게 믿는 나로서는 사람이나 꽃이나 홀로 지내기보단 가능하면 함께 어우러져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야생화를 찾아다니다 보면 꽃 이름 중에도 재미있고 해학적인 이름이 많다. 4~5월경에 피는 '홀아비꽃대'도 그 중에 하나인데 이름만 들으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세태와 겹쳐져 쓸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홀아비'는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사내'라고 적혀 있다. '홀아비는 이가 서 말, 과부는 은이 서 말'이란 옛 속담도 있다. 여자는 혼자 살아도 남자는 혼자 살기 어렵다는 뜻이겠지만 요즘 세태와는 어울리지 않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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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꽃대

홀아비꽃대는 전국 산지의 나무 그늘에서 잘 자라는 홀아비꽃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사투리로는 호래비꽃대라고도 부른다. 이름만 들으면 궁상맞고 구질구질한 홀아비의 처량한 모습을 연상하게 되지만 실제로 만나는 홀아비꽃대는 이름과는 전혀 다른 깨끗하고 청초함마저 느껴지는 독특한 모양의 신선한 꽃을 피운다. 홀아비꽃대의 꽃은 마치 유리병을 닦을 때 사용하는 병솔 모양을 닮았다. 흔히 생각하던 꽃 모양과는 판이한 이삭 모양을 하고 있어 우리의 평이한 상상을 여지없이 뒤엎어 놓는다.

훗날 꽃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니 홀아비꽃대의 '홀아비'는 식물체에서 꽃대만이 마치 촛대처럼 홀로 솟아올라 꽃이 피고 지는 외로운 풀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해석으로는 한 개의 꽃대에 꽃받침과 꽃잎도 없이 수술로만 구성된 불완전화에서 생겨난 이름이라고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든 홀아비꽃대는 당당하게 피어나 봄 숲의 나무 그늘을 환하게 밝혀준다. 홀아비와 연관 지은 것은 꽃이 아니라 사람이니 꽃의 이름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 싶다. 그보다는 일본 이름인 때 묻지 않은 한 사람이라는 뜻의 일인정(一人淨)이란 이름이 조금은 더 근사하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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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꽃대

홀아비꽃대는 뿌리가 옆으로 뻗으면서 마디마다 줄기가 돋아나 10~25㎝ 정도 높이로 곧게 자란다. 줄기 끝에 4장의 잎이 돌려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마주보고 돋아난 2장 잎이 수직으로 배열되어 십자형을 하고 있다. 잎이 있는 자리에서 2~3㎝ 정도 크기의 꽃대가 올라와 꽃대 주위에 꽃이 돌려나는데 꽃이 피기 전에는 4장의 잎이 감싸며 꽃잎과 꽃받침 대신에 꽃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준다. 4~5월경에 피는 순백의 꽃은 하얀 실처럼 보이는 수술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병을 닦는 솔과 흡사하게 닮았다.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말린 것을 은선초(銀線草)라 부르며 중풍, 종기, 기관지염, 월경불순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쓴다. 홀아비꽃대에서 추출한 클로란타락톤(chloranthalactone)이란 성분은 쥐의 백혈병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홀아비꽃대만이 아니라 세상의 꽃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은 이로움을 베푼다. 그 꽃들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나 심정을 투사하기도 하고 꽃을 통해 끊임없이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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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꽃대

눈발이 흩날리는 변덕스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남쪽에선 벌써 매화가 피었다는 화신이 앞 다투어 날아든다. 몇 번의 꽃샘추위가 시샘을 하겠지만 어김없이 봄은 오고 세상은 눈부신 꽃밭이 되어줄 것이다. 봄날의 나무 그늘에서 당당하게 꽃대를 밀어 올려 꽃을 피우는 홀아비꽃대처럼 외로운 사람들 가슴에도 꺼지지 않는 꽃대 하나씩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