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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할미꽃-고개 숙인 꽃의 향기가 더 멀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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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할미꽃-고개 숙인 꽃의 향기가 더 멀리 간다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추운 겨울을 제외하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각양각색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그 중에도 봄은 야생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들 중 절반 이상이 꽃을 피우는 꽃의 계절이다. 기상청 전망에 따르면 올봄은 여느 해보다 따뜻할 거라 하니 올봄은 보다 화려하고 멋진 꽃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크다. 다만 걱정인 것은 계절풍을 타고 황사가 몰려와 꽃바람을 잠재우고 미세먼지로 인해 마음껏 꽃구경을 못할까 싶은 것이다.

이런 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봄의 대지는 온갖 꽃을 어김없이 세상을 향해 피워낼 것이다. 일부러 들꽃을 찾아 멀리 탐행을 떠나지 않아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들이 수없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할미꽃이다. 어렸을 적, 볕바른 무덤가에서 쉽게 마주치던 할미꽃은 그 이름만큼이나 친근하고 정겨운 꽃이었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 잿빛 도시의 삶에 익숙해지는 사이, 공해에 약한 할미꽃은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지듯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꽃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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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할미꽃은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볕이 잘 드는 산자락이나 무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키는 한 뼘쯤 자라고, 고개를 숙인 채로 꽃을 피우는 까닭에 키는 작지만 땅속 깊이 뿌리를 단단히 내린 덕분에 한 포기에서 여러 해를 두고 꽃을 피운다.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바람에 꺾이지 않고 사람은 심지가 굳어야 유혹에 휘둘리지 않는 법이다.

할미꽃을 잘 모르는 사람은 할미꽃이란 이름만 듣고 볼품없는 꽃이려니 여기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할미꽃만큼 예쁜 꽃도 없다. 꽃대 끝에 매달린 듯 고개 숙인 꽃송이를 들여다보면 꽃빛은 붉다 못해 검은 자줏빛을 띠고 황금색의 샛노란 수술들은 황홀한 기품마저 느껴진다. 줄기와 잎, 꽃잎에까지 가득한 보송한 솜털은 아가의 솜털처럼 마냥 사랑스럽다. 붉은 빌로우드 천 같은 부드러운 꽃잎은 여느 꽃들이 지니지 못한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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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처음 꽃을 피울 때는 한 뼘도 되지 않을 만큼 키가 작지만 다 자라면 30~40㎝ 정도는 족히 되고도 남는다. 번갈아 꽃을 피우는 통에 한쪽에서는 꽃이 피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열매가 익어간다. 작은 열매엔 할머니의 머리칼처럼 긴 깃털 같은 게 달려 있는데 바로 암술대로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데 도우미 역할을 한다. 할미꽃이란 이름은 줄기가 할머니의 꼬부라진 허리 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씨앗에 달린 흰털이 할머니의 흰 머리와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두옹(白頭翁)이란 한자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한 것이고 보면 사람들의 생각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할미꽃은 백두옹이란 한자 이름 외에도 할미씨까비, 주리꽃, 고냉이쿨, 하라비고장(제주) 등 다양한 향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우리와 친근한 꽃이었다는 반증인데 공해에 약한 탓에 할미꽃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 다행인 것은 할미꽃이 요즘 향수를 자극하는 야생화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미꽃은 여러해살이 풀이라서 볕 잘 드는 화단에 한 번만 심어놓으면 두고두고 해마다 어여쁜 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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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고개 숙인 꽃의 향기가 더 멀리 간다'는 오래 전 내가 썼던 할미꽃 시의 한 구절이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할미꽃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피는 꽃도 많다. 태양을 향해 맞서듯 당당하게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할미꽃처럼 고개 숙인 꽃들도 여전히 아름답다. 고개 숙인 꽃의 향기가 더 멀리 번지듯이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건네는 향기가 넘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