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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효진 안무의 'The Lost(유실)'…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한 초월적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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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효진 안무의 'The Lost(유실)'…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한 초월적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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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선물'.
우면산 수리의 슬픔이 울려 퍼져/ 뻘건 진흙이 귀밑에 매달려 있다/ 장맛비에 밀려와 허망하게 물 빠진 또랑처럼/ 바그다드 카페에 얼려진 얼음알갱이마냥/ 불안한 일상들이 여인 곁에 핀다/ 작은 새소리 같은 익숙해진 소음들/ 부름과 움직임을 대신하는 냉장고/ 미선나무처럼 푸르고 장미처럼 늘 붉어야만 할 텐데..../ 여진으로 남아있던 열정들이 실핏줄에 스며든다/ 내 마음의 정원으로 아침햇살을 불러/ 장밋빛 꿈을 뿌리는 서편 강의 연인/ 웃음꽃이 핀다

2월 16일(토)・17일(일) 이틀간 오후 다섯 시, 포이동 M극장에서 공연된 최효진 안무의 『The Lost, 유실』은 ‘성숙으로 가는 길목의 여인의 심정’을 감성적 코드에 담아낸 현대무용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위로하는 것은 현재적 삶이 아니라 『Happy Day』, 『선물』과 같은 과거의 기억이다. 현재는 건조하고 반복되는 일상일수도 이지만, 그 ‘유실’(流失)은 내면적 자신을 단련시키고 다가오는 희망들을 배양시키며 숙성시키는 도구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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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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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유실'.

안무가 최효진은 ‘전통과 현대 사이의 여성에 관한 한 연구’, 『유실』을 통해 문학적 상징과 리듬감을 구사하면서 여성성을 섬세하게 조망하고 있다. 페미니즘으로의 치우침이나 신 이념을 주입시키는 특정 주의로의 강제없이 균형감감을 이루고 있는 작품은 예술의 운명과 예술가의 삶을 자연스럽게 도출해낸다. 표현 자체를 위한 예술을 지양하고 대중과의 호흡을 위한 여섯 번째의 개인공연은 예술창작자로서의 본연의 사명과 작품의 예술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유실』은 『상실의 새』의 연작이다. 일상의 삶에서 찾아낸 소재를 창작 모티브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해온 안무가 최효진은 아내, 어머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유실’되어가는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다. 직접적 동인(動因)은 우면산 산사태에서 기인한다. ‘나’란 존재는 어느 순간 산사태처럼 무너져 버릴 수 있다. 소실되어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강조한 이전의 안무작들이 폭넓은 공감을 얻었듯 그녀의 『유실』은 아린 감정을 추출해내는 수사를 이어 가고 있다.

다양한 학설과 주장에 함몰되지 않고, 서양의 기교를 빌어 우리의 정서와 느낌으로 작품화 시키는 남다른 독창성은 예술지상주의가 저지르고 있는 폐해를 치유해주는 노련한 경험과 현명한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현대무용과 가치공유는 최효진 춤의 지향점이다. 그녀의 안무작은 건강하고, 경쾌하고, 서정적이다. 척박한 한국 현대무용의 토양에서 건강한 현대춤의 교양적 경작은 모험적 도전이다. 최효진 춤에 대한 옹호가 성립되는 이유이다.

춤을 추며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Happy Day』를 지나 아름다운 기억들이 담긴 『선물』을 떠올리며 오늘을 맞는 하루하루의 날들은 자신의 자양분을 선사하면서 타인을 위한 즐거운 날들을 만들어 주어야하는 위치로 바뀌게 된다. 마지막 살점까지 새끼에게 먹이며 사라지는 어미 물고기처럼 아름답지만 슬픈 현실의 굴레는 시대를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예술가로서 어머니는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상당부분 희생해야하는 극적 인간관계를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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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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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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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유실'.

『유실』은 소박한 귀납법의 상태를 견지한다. 계절의 변화에 견주어지는 삶의 순환 속에 ‘나이 들어감과 성숙’ 사이의 여성의 삶이 무시화(舞詩化)되면서 미학의 한 부분이 된다. 작은 동작하나 하나는 시간, 날, 연(年)이 모여 세월을 이루고 있다. 그 틈 속으로 여성의 중복되는 가사(家事), 중시되는 사운드가 암시하는 ‘말’(언쟁)과 ‘소리’(요구와 간섭)가 일으키는 갈등이 끼어든다. 부조리, 모두 기억하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여인적 여성은 존재해있다.

상징에 관한 몇 가지 상상은 냉장고(무수한 요리를 위한 재료 비축과 식욕을 채우는 가사노동의 도구), 세탁기와 청소기(가족들을 청결을 위한 가사노동의 도구), 텔레비전 뉴스와 라디오 음악(누군가는 쉬는 시간에도 쉴 수 없는 상황), 테이블 뒤로 나뒹구는 물 잔과 우유 잔(육아 등에 걸친 봉사와 설거지), 아파트 문간에 떨궈진 배달 박스(외출을 할 수 없는 상황), 냉장고에 채워지는 재료들(새로운 가사노동의 재료들)에 이른다. 고로 어머니는 담대하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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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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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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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유실'.

어머니가 된 여인을 위로하는 헌사(獻辭), 김광석 작사・작곡, 이은미 노래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가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 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 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 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유실』은 안무 설정에 따른 개성 있는 움직임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여성들의 일, 꿈, 정체성에 부합되는 주제성을 드러낸 작품이다. 반복적이며 중독성 있는 배경음악은 솔로, 듀엣, 군무를 조합해낸다. 안무가는 ‘빨간 구두’로 상징되는 여인의 가슴속의 열정과 현재적 삶을 서정의 숲에 전시하고 있다. 서정적 몸 시로써 최효진의 주장과 입장을 밝힌 작업은 현대무용의 난해함을 털어내고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여성안무가의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