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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 진단] 하노이 선언, 베트남 도이머이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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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 진단] 하노이 선언, 베트남 도이머이의 교훈

[김박사 진단] 하노이 선언,  베트남 도이머이의 교훈… 북미정상회담과 남북경협주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환율이미지 확대보기
[김박사 진단] 하노이 선언, 베트남 도이머이의 교훈… 북미정상회담과 남북경협주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환율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김박사 진단] 하노이 선언, 베트남 도이머이의 교훈… 북미정상회담과 남북경협주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환율

트럼프 시진핑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시작된 가운데 도이머이가 큰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하노이 선언 못지 않게 도이모이에 대한 관심을 뜨겁다.

북한이 노동당 공식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27일 '경제 발전에 힘을 넣고 있는 베트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노동신문은 특히 베트남이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 고속 성장을 이루게 한 데에 주목하고 있다.

도이머이는 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제기된 슬로건이다.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시장경제시스템을 일부 도입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중국 등소평이 주창한 개혁개방과 유사하다.
도이머이는 베트남어로 Đổi mới로 쓴다. 우리말로는 쇄신이라는 뜻이다.

베트남의 도이모이는 1986년 처음 나왔다.

처음에는 아이디어 차원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그러다가 1988년 4월 중대한 조치를 발표한다.

이른바 공산당 정치국 제10호 결의이다.

공산당 정치국 제10호 결의는 전국 농촌에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함께 경작하는 인민공사를 해체하는 것이다.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각 농가가 농업 형성의 기본 단위로 독자적으로 영농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결의에 따 인민공사가 농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농업 경영의 기본적 단위를 집단 농업으로 하는 시대는 끝이 났다

가난을 나누는 교조적 공산주의에서 효율을 높여 많이 생산해 그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수정 공산주의로의 일대전환 이었다.

도이모이 이후 농민의 삶은 변화하고 농민 전체가 훨씬 풍부해졌다

공산당은 농촌의 도이모이가 성공을 거두자 도시에도 도이모이를 확대해 나갔다.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대외개방 정책으로 외국인 자본을 끌여들였다.

베트남 '도이모이' 는 응웬 수완 와잉(Nguyen Xuan Oanh) 박사가 주도했다.

응웬 수완 와잉(Nguyen Xuan Oanh) 박사는 1954년 미국 하버드 대를 졸업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에서 근무한 이코노미스트이다.

베트남 전쟁당시 남 베트남(월남) 쪽으로 들어가 티우 대통령 밑에서 부총리를 역임했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반동으로 몰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응엔 반 링 전 베트남 공산당 총 서기와 보 반 키엣 전 총리에게 발탁되어 경제고문을 했다.

응웬 수완 와잉(Nguyen Xuan Oanh) 박사는 특히 80년대 후반 적국이었던 미국을 여행하면서 사업가, 국회의원 등과 접촉, 미국과의 경제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기틀을 마련했다.

와잉박사는 지난 1997년 통일베트남 국민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 (勳四等旭日小授章)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