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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음식윤리, 유토피아를 꿈꾸는 백일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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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음식윤리, 유토피아를 꿈꾸는 백일몽인가?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음식윤리? 먹는 음식에까지 무슨 윤리가 필요해? 먹는 거라도 내 맘대로 먹게 놔둬! 법이 있잖아? 법이면 충분한데 왜 그래? 도대체 윤리를 따져가면서 어떻게 음식을 만들고 팔겠어? 효율성이 떨어지잖아? 경제성은 있겠어? 그러면 누가 음식점이나 식품회사를 경영하겠어? 너무 한가하고 비현실적이잖아? 그렇다면 음식윤리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몇몇 이상주의자의 백일몽에 불과할까?

과거의 인류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유토피아였다. 인구는 늘어나고 먹을거리는 부족해, 인류생존이 늘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인류는 부족한 먹을거리를 나눠먹는 길을 선택했다. 사회구성원 사이의 협력과 경쟁의 균형을 ‘음식 나눔’이라는 지혜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 음식 나눔이 음식윤리의 원형이고, 밥그릇이 음식윤리의 상징이다. 음식윤리 덕분에 인류는 대대로 생존해오면서 ‘세미’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인류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꿈의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유토피아에 산다면서 음식윤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그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인류에게 생긴 새로운 문제가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고, 둘째, 인류에게 예전부터 있던 문제가 생존을 위협할 만큼, 설상가상 더욱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인류의 새로운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먹을거리에서 비롯되었다. 비만과 만성질환, 음식물 쓰레기 등이 풀기 어려운 대표적 문제다. 문제의 주원인이 하루 세 끼 달고 기름지게 먹으면서, 한 끼 정도 분량을 쓰레기로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자. 그래도 두 끼만 먹으라고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문제는 법집행과 더불어 음식윤리를 실천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생존을 지속할 수 있다.

둘째, 인류의 예전부터 있던 문제는,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그 배경에는 효율성·경제성에 대한 집착이 있고, 집착에 사로잡혀 생명의 우선순위를 혼동할 수도 있다. 최근의 ‘보일러 일산화탄소 중독’ 사례를 보자. 원칙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생명의 우선순위가 흔들리지 않았는가? 먹을거리에서도 원칙과 우선순위가 중요한데, 이를 지키지 않는 관행이 여전하여 생존을 위협할 지경이다. 정의롭지 않은 거래, 소비자기만, 유해물질 첨가 등이 대표적인 관행이다. 관행은 윤리불감증의 원인이자 결과다. 따라서 관행에 민감한 태도가 원칙을 지키는 음식윤리의 출발점이다. 관행에 무감각하면, 음식관련 사건·사고를 피할 수 없고, 인류생존도 흔들리게 된다.

음식점이나 식품회사에 품질관리가 필요하듯, 국가 역시 음식의 품질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관리는 사람이 하는 것. 제대로 관리하려면 관리자의 음식윤리 마인드가 선행되어야 한다. 법의 주목적이 음식관련 사건·사고의 사후관리인 반면, 음식윤리는 사전예방에 주목적이 있다. 음식윤리를 준수하면 음식관련 사건·사고가 적게 발생한다는 의미다. 그럴 경우 음식윤리는 우리 사회의 효율성과 경제성도 향상시킬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음식윤리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백일몽일까? 아니면 유토피아를 실현하도록 이끄는 견인차일까?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