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박주경은 코엑스홀에서 개최된 화랑미술제에 참가하여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작가는 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천부적인 재능과 기교를 보여준다. 이 시대의 잔잔한 이야기꾼인 작가는 ‘봄의 왈츠’, ‘나비문고-동물나라 책방 이야기’, ‘봄소식’, ‘선물’, ‘낮선 방문객’, ‘힐링타임’ 같은 화제(畵題)로 상상을 촉발한다. 은근히 욕망을 드러내고, 장난기어린 도발로 경쾌하고, 발랄한 세상을 만들어가며 갇혀있는 동력을 끌어내며 분발을 촉구한다.
작가는 '봄의 왈츠'展을 열면서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적는다.
"겨울 끝자락, 춥고 으스스한 날씨에 몸은 움츠러들지만 햇살 한 자락에도 마음이 금세 녹아든다. 겨우내 세상을 온통 시꺼멓게 만들었던 검은 패딩 행렬로 눈이 아려와 어서 어서 초록의 새순들로 화사하게 단장하고 싶다. 날선 투쟁으로 혼탁한 속세의 악다구니는 물러가는 동장군의 뒷 꽁무니에 매달아 함께 날려 보내고 봄의 왈츠에 맞춰 춤을 추는 무희들이 문턱까지 다다른 새봄을 경쾌하게 맞이하고 있다. 막바지 추위로 기승부리며 기울어가는 위세를 잡고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겨울 바람신들도 무희들의 춤사위엔 속수무책이다. 봄의 왈츠에 맞춰 아름다운 무희들의 너울거리는 춤사위로 얼어붙은 이 땅에 초록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아...봄, 봄, 봄 일렁이는 물결처럼, 휘몰아치는 파도처럼...그렇게 봄이 오려나보다."
봄맞이하는 무희들의 춤사위, 테마는 설레임이다. 봄을 더디게 하는 모순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순리는 거스름이 없다. 인간은 세상을 역행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겨울잠 자던 세상이 술렁거리고, 햇살은 나른한 대지를 깨워 싱그러운 초록으로 물들인다. 카랴얀이 지휘하고, 흑진주 캐슬린 배틀의 청아한 노래에 맞춰, 화사한 빛깔의 아름다운 무희들이 춤추는 봄의 왈츠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면, 더딘 발자국으로 오던 봄의 소리가 바쁘게 화답할 것 같다. 캔버스를 이중 면 분할하여, 각기 다른 그림의 두 개의 면을 한 화면으로 사이 사이 겹쳐진 상태로 조합하면 무희들의 율동이 앞뒤 화면에 중첩되면서 입체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겨우내 춥고 음습했던 몸과 마음이 봄기운에 서서히 아물어 간다. 대지가 푸르게 깨어나고 초록의 잎새들과 보랏빛 꽃향기에 취해 작가도 모르게 한아름 나들이 가방에 담아왔다. 꽃향기에 묻혀 따라온 봄의 정령들이 컴컴한 신발장 속에 쳐박혀 있던 스니커즈를 호출한다. 연록색의 화사함과 붉은 열정으로 분한 정령들을 발밑에 두고 싱그러운 봄을 온천지 뛰어다니며 즐길 시간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노라고 산들바람이 소식을 전해온다.
사뿐히 날아오르는 그녀의 발레슈즈에 봄이 걸려온다. 꽃샘추위가 맹렬히 방해하며 퇴장하기 싫어하는 동장군을 머뭇거리게 한다. 입춘의 부적을 꽁지에 달았건만 세상에 미련이 많은 것인지 새순에 딸려오는 봄을 막아서고 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파릇한 발레슈즈를 신고 봄의 왈츠에 맞춰 춤사위로 동장군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녀를 출격시킨다. 내일부터 긴 연휴가 시작되는데 봄나들이로 마음 들뜬 나들이족들에게 그녀가 봄을 선물하려고 밤새도록 춤을 추고 있다. 겨울의 미련을 혼신을 다해 쭉 뻗은 다리로 밀어내는 중이다. 내일은 입춘 뒤에서 대기 중이었던 살랑 살랑 봄바람이 그녀의 발레슈즈를 타고 들어와 따사롭게 맞이할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여자의 소중한 신발과 가방을 탐하는 은밀한 침입자가 나타났다. 녀석은 잔뜩 경계심을 품고 서서히 다가온다. 붉은 와인색의 단화와 화려한 꽃문양의 가죽 가방은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꾸며줄 최고의 핫 아이템이다. 오늘 밤 클럽의 주인공은 단연 그녀가 될 거다. 이 세상의 수많은 그녀들이 선택할 그곳, 안전도 보장될 것이란 믿음의 푸른 공간이 실은 사방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먹잇감처럼 접근하는 정글같이 위험한 곳임을 휘황한 불빛과 감미로운 선율로 가려지고 있다.
아크릴페인팅 클럽에서 힐링타임이 시작되었다. 남자들이 배제된 여자들만의 바에서 한창 우정과 열정이 무르익어 간다. 아직은 낮선 풍경이다. 남자들만의 공간이고 전유물이었던 밤 문화가 아름답고 당당한 그녀들로 인해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클럽과 바에서 그녀들만의 달콤한 시간이 방해받지 않도록 남자들은 부디 끼어들지 않기를... 서비스라는 이름표를 달고 앉았던 여성의 자리에 반란하며 남자들이 향유해왔던 저 은밀한 영역이 금이 가고 있는 현장이다.
박주경의 아뜰리에에는 밤이 없다. 불의 전사는 황무지를 일구는 심정으로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푸른 말을 부려왔다. 기착지마다 새로운 자신의 성을 쌓고 존재감을 실어왔다. 또 다시 찾아 온 봄에 그녀는 자신의 열정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 작가의 작품들은 오래 두고 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고고한 품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람은 신 한류의 한 편에 우뚝서있는 그녀의 편임을 핵심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입증해내고 있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