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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피지컬 드라마의 묘미 보여준 역작…신종철 총괄안무, 배혜령 연출의 '경성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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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피지컬 드라마의 묘미 보여준 역작…신종철 총괄안무, 배혜령 연출의 '경성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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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총괄안무 배혜령 연출의 '경성 1932'
“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숲 속으로 갔다. 깊이 파묻혀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며 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들을 모두 떨치고 삶이 다했을 때 삶에 대해 후회하지 마라.”(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지난 3월 1일(금)과 2일(토) 오후 6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밀물무용예술진흥원 후원, JCDance(대표 신종철) 주최로 개포동 M극장에서 공연된 <경성1932>는 톰 슐만의 '죽은 시인의 사회'를 신종철・안수민 각색으로 일제강점기 시대로 환치하여 연극・무용・음악을 아우르는 피지컬 드라마이다. 독창적・실험적 창작활동을 해온 신종철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치며 시대적 교육현실에서 열린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교사와 그 가르침을 존중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사의 참교육 의지와 교육이념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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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총괄안무 배혜령 연출의 '경성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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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총괄안무 배혜령 연출의 '경성 1932'

1900년 한성중학교로 출발, 1911년 경성고등보통학교로 개명하고 난 뒤 명문이 된 새 학기 개강식. 이 학교 출신 최원종 선생(조원종)은 영문학 교사로 부임한다. 첫 시간부터 최원종 선생은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파격적 수업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오, 나의 선장님!”하며 영이는 최원종 선생을 선장님이라고 부르며 따르게 되고,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김 영(최재현)과 친구들은 엄격한 교칙을 어기고 문학동아리를 만들고 활동하면서 최 선생을 통해 참된 인생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작품은 빈 무대에 네 개의 책상만 사용하여 이미지를 만들고 공간 활용도를 높인다. 조명 디자이너 백하림은 조명을 이용하여 상황과 분위기, 장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인간의 심리적인 모습을 담아낸다. 의상은 시대 배경을 표현한다. 음악(장지호, 음악지도 심현미)은 시대의 흐름을 설명해주며 교사와 학생들・교장과 아버지의 심리, 장소에 따르는 효과음과 분위기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라이브 피아노가 현장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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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총괄안무 배혜령 연출의 '경성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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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일제강점기 시대로 옮겨 온 각색은 한국적인 정서를 담는다. 원작에서는 키팅 선생의 관점에서 학생들을 바라 본 모습이 상세하게 표현되었다. JCDance의 <경성 1932>는 학생의 관점에서 최 선생의 영향을 받으면서 심리적 변화, 의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학생들의 모습을 더욱 섬세하게 표현한다. 작품은 ‘나’라는 주체를 통하여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표현한다.

<경성 1932>는 각색 스토리를 바탕으로 관객이 극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상황, 분위기, 인간 심리를 음악과 함께 무용으로 표현된다. 잘 알려진 영화와 소설과 달리 ‘카르페 디엠’을 외치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육방식을 가르치는 최원종 선생의 모습보다 학생들이 이러한 교육과 최 선생의 영향을 받으면서 서서히 바뀌는 심리 변화, 의지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더욱 섬세하게 무대에 표현된다.
누구나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어딘 쯤 인가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열정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은 꿈이 있다. 현실세계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장애물들이 산재해 있고, 그 꿈을 잠시 덮어두게 만들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편에 존재했던 꿈들이 점차 흐릿해지고 초심을 잃기 쉽다. 보통사람들은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풍경에 익숙해져있다.

춤은 극과 어우러질 수 있는 상황들을 중심으로 억압받는 청춘들의 모습은 점차 작아지는 스퀘어와 좁은 공간에서 군무, 여러 가지 대사와 어우러지는 움직임과 모션으로 나타난다. 극은 최 선생의 수업과 박지원(엄헤빈) 학생의 변화하는 이미지를 중심축으로 둔다. 학생들은 책상에서 시를 고민하고 최 선생의 분발과 격려로 수업시간에 야성을 지르기도 한다. 최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굴을 찾은 학생 각자의 이미지들이 세심하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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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총괄안무 배혜령 연출의 '경성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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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총괄안무 배혜령 연출의 '경성 1932'

번뿐인 인생이기에 걱정보다는 지금 현재를 즐기라는 암시는 근심으로 채우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으며 행복하기에도 벅찬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는 많은 도덕적・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최 선생은 내 인생의 시작도 끝도 ‘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교육의 주체 중 하나인 부모에 대한 비판 또한 담고 있다. 김 영의 죽음과 그 주변 환경이 사실 모두 부모의 비뚤어진 욕망과 교육관에서 비롯되었다.

소품과 의상의 색상은 무채색이 기본이다. 검정색 교복은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암울한 교육 현실, 회색은 최 선생의 캐주얼 정장으로 보통사람들, 양복 안에 와이셔츠는 하늘색으로 맑은 이미지 , 아버지의 겉옷은 회색 몸 안의 검정색으로 자신이 갖지 못한 욕망을 딸의 교육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삐뚤어진 부모를 각각 상징한다. 붉은 꽃과 의상, 쓰레기통은 관습을 버리고 나답게 살고자하는 색상의 의미이다.

신종철은 뮤지컬 <베토벤 심포니>(2017) 연출을 시작으로 2018년 <NO.9>(2018), <경성 1932>에 이르기 까지 극을 바탕으로 미니멀한 움직임과 배우의 신체를 이용한 움직임으로써 인간심리를 표현하는 실험해오고 있다. 1999년 전문무용수와 배우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JCDance를 이끌면서 현 사회속의 끝없는 왜곡, 진실, 부조리를 몸 언어로 표현해내며 ‘인간의 본질적 가치 되찾기’와 ‘한국 공연예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피지컬 드라마는 언어극의 한계를 극복해낸다. 한 단계 높은 예술적 표현을 위해 무언극이나 무용극적 요소를 결합한 융・복합 극이다. 실험적 창작활동과 경험을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보다 친근한 방식으로 공연예술의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하며, 소통으로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는 철학을 신봉한다. 신종철・배혜령 양 인의 예술가가 이 시대의 교욱 현실을 두고 고민한 <경성 1932>는 독특한 발상으로 의미 있는 극적 흥미를 보인 작품이었다.

▶ 출연 조원종, 신준철, 엄혜빈, 최재현, 권민주, 이채영, 심도희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