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칼럼] 승리의 성 접대? 원조는 일본이다

기사입력 : 2019-03-23 08:09

  • 인쇄
  • 폰트 크기 작게
  • 폰트 크기 크게
공유 2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구글플러스 공유하기




center
[글로벌이코노믹 이정선 기자]


‘혹시나’했더니, ‘역시나’였다. 그냥 있을 일본이 아니었다.

일본의 타지마 오사무(但馬オサム)라는 작가가 “성 접대는 조선의 오래된 문화”라고 빈정댔다는 것이다.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의 해외 투자자 성 접대 의혹과 관련, 이 같은 망언을 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일본 작가는 ‘성 접대’의 ‘원조’가 자기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왜란’을 도발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봐도 알 수 있다.

도요토미는 걸핏하면 영주(다이묘)들에게 아내를 바치라고 ‘명령’했다. 그 명분이 희한했다. 아내를 사이좋게 ‘공유’하면 군신 관계가 깊어져서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명분이었다.

최고 권력자가 아내를 ‘공유’하자는데, 거부하기는 힘들었다. 아내를 바치면서 그 대가로 ‘출세’를 반대급부로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소극적인 저항’이 있기는 했다. 어떤 영주는 아내의 얼굴을 인두로 지져서 ‘추녀’로 만들어 바쳤다. 어떤 영주는 자기 아내가 아닌 ‘가짜 아내’를 구해서 바치기도 했다.

시코쿠의 산골 마을에는 1920년대까지 ‘접대혼(接待婚)’이라는 게 있었다. 길 가던 나그네가 찾아들면 자기 아내나 딸을 하룻밤 노리개로 제공한 것이다. 1920년대라면 20세기다. <일본인의 性, 히구치 기요유키(樋口淸之) 지음, 유은경∙이원희 옮김>

보도에 따르면, 이 일본 작가는 “박정희 정권 시대 기생은 반 공무원으로 외국 관광객(주로 일본인)을 상대로 외화벌이 역할을 담당했다”며 “기생 관리는 중앙정보부가 맡았다”고도 주장했다.

그렇지만, 도요토미는 1589년 교토의 야나기초(柳町)에 몸 파는 여성인 ‘유녀’들이 ‘손님’을 모시는 ‘유곽’을 만들었다. 유녀의 숫자가 3000명에 이르기도 했다. 일본은 ‘유곽 안내서’인 ‘요시와라 사이켄(吉原細見)’이라는 팸플릿까지 발행했을 정도다.

몸 파는 여성을 공급하는 ‘제겐(女衒)’이라는 직업까지 있었다. 인신매매업자다. 농촌을 누비고 다니며 가난한 집 처녀를 사냥해서 조달해준 것이다. 공공연하게 이런 짓을 하는데도 ‘막부’에서는 모른 척했다.

‘섬나라’ 일본답게, ‘수상 매춘’도 성행했다. 물 위에서 웃음을 파는 매춘부를 ‘후나만쥬우(船饅頭)’라고 했다. ‘손님’을 끌어들이는 일은 뱃사공 담당이었다.

‘호색한’인 이토 히로부미에게는 ‘천인킬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화류계 여성을 닥치는 대로 건드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래서인지, 이토는 1896년 영국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공창제도를 폐지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위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점령군’을 ‘성 접대’하기 위한 여성을 긴급하게 모집하기도 했다.

“신여성에 고함. 전후 처리의 국가적 긴급 시설의 하나로 진주군 위안 대사업에 참여할 신일본 여성의 협력을 구함. 연령 18세 이상 25세 이하, 기숙사, 의복, 식량 등 지급함.”

흑선(黑船)을 몰고 와서 일본 전체를 기겁하도록 만들었던 미국의 페리 제독은 이렇게 혹평하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매우 음란한 족속이다. 목욕 풍습은 말할 것도 없고, 통속문학은 민망할 정도로 음란하다. 취미와 관습이 호색 투성이다. 그 음란함은 싫증날 정도로 노골적이며 더럽혀져 있다.…”

일본 작가는 자기나라 역사부터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이정선 기자 jslee@g-enews.com

이정선 기자(데스크) jslee@g-enews.com

오늘의 핫 뉴스

실시간 속보

금융 최신기사

데스크칼럼 많이 본 기사

가장 많이 공유 된 기사

생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