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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설레는 제주 봄 바다, 노란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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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설레는 제주 봄 바다, 노란 유채꽃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문득 제주에 가고 싶어졌다. 얼마 전 근무지를 제주로 옮긴 벗이 보내온 사진 한 장 때문이다. 사진 속의 벗은 제주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노란 유채꽃을 배경으로 봄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일견 부럽기도 하고 은근히 질투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라도 내게 제주의 봄소식을 전하는 벗이 있다는 게 고맙단 마음이 앞선다.

전남 광양의 매화축제나 구례 산동마을의 산수유축제가 봄꽃축제로 유명하기는 해도 제주의 흐드러진 유채꽃 물결을 보니 봄은 여는 것은 아무래도 유채꽃이요, 봄의 마무리는 벚꽃 엔딩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엔 원예용 화초나 작물의 꽃은 철저히 외면하고 아예 꽃 취급을 하지 않기도 하는데 세상에 꽃 치고 예쁘지 않은 꽃이 없고, 어디에 피어도 사랑스러운 게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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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꽃

냉이는 꽃이 피면 끝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나물이나 채소는 꽃이 피면 식용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유채는 나물은 나물대로 꽃은 꽃대로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유채(油菜)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유채는 기름을 짜는 채소다. 지중해 연안이 고향으로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와 같은 삽자화과에 속하는 경관식물로 그 쓰임이 매우 다양하다.

어린 싹은 봄의 미각을 돋우는 달콤 쌉쌀한 향이 매력적인 봄나물 중 하나였다. 재래종 유채는 우리말로는 평지, 일본에서는 하루나(春菜)로 불렸는데 보통 이른 봄에 어린 줄기와 잎을 나물로 무쳐먹거나 잎만 모아 겉절이를 하거나 된장국을 끓여먹기도 했다. 노란 유채꽃은 봄 들판을 봄빛으로 가득 채우며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효자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1주일 남짓 화르르 피었다지는 벚꽃과는 달리 한 달여에 걸쳐 들판을 황금빛으로 수놓는 유채꽃이야 말로 봄날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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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꽃

뿐만 아니라 벌을 키우는 양봉업자에겐 꿀을 공급하는 밀원식물로 인기가 높고, 씨앗에서 짜낸 기름은 옛날부터 등잔이나 램프의 연료로 쓰였는데 현재는 바이오 에너지 원료와 품질 좋은 식용유를 만드는 데에 주로 쓰인다. 주방에서 요리할 때 쓰는 카놀라유가 바로 유채에서 짜낸 기름이다. Canola는 Canadian oil, low acid를 줄인 말로 1970년대 캐나다에서 개발되어 저온에도 강하고 인체에 무해한 식용에 적합한 신맛이 적은 유채기름이란 뜻을 담고 있다.

유채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고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뛰어나 주로 가을에 씨를 뿌리는데 열무처럼 채소를 이용하기 위해 봄에 파종하여 재배하기도 한다. 쓰임새도 다양하고 여러 면에서 유익한 작물이지만 나는 봄의 길목에서 노란 유채꽃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전히 축복 받은 느낌이다. 멀리 제주에서 정성으로 유채꽃 사진을 보내온 벗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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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꽃

한때 ‘꽃길만 걷게 해 줄게.’란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누구라도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에게 꽃길만 걷게 해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여정 속엔 꽃길만 이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가시밭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걷는 길 위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도 들어있기 마련이다. 비록 가시밭길을 걷고 있어도 꽃을 보고 걸으면 꽃길을 걷는 것과 같다. 좋은 추억은 우리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고 힘을 내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봄꽃 축제를 찾아 꽃길을 걸으며 추억의 인생샷을 남기고자 하는 이유도 잠깐의 행복한 순간이 두고두고 우리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봄엔 잠깐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꽃길을 걷는 그대이기를.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