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회장과 박 회장 퇴진 배경에는 차이가 있다. 단적으로 설명하면 '타의에 의한 실권'과 '자의에 의한 실권'이다. 조 회장은 총수 일가의 각종 갑질 논란과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결국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을 박탈당했다. 박 회장도 갑질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감사보고서 ‘한정’의 견으로 촉발된 회계 문제가 금호아시나아그룹 전체 유동성 위기로 번지면서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양측 모두 타의건 자의건 그룹내 ‘권력의 핵’ 역할에 제한을 받게 돼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힘의 이동’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의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과 박 회장의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 행보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조 사장은 2016년 3월 대한항공 대표이사 총괄부사장으로 선임돼 이듬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박 사장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해 2016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사장, 2016년 금호산업 사장을 거쳤고 2018년 9월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업계에선 조 회장과 박 회장 모두 아들을 중심으로 그룹 재편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주주 및 채권단측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조 회장과 박 회장이 경영승계를 염두에 둔 경영 개입은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즉 외부 시선을 의식해 아들들에 힘을 이동시키는 가시적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대신 이들은 측근 등을 통한 '막후 경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주총 반대 의견 속에서도 조 회장 최측근 석태수 대표가 그룹 지주사격인 한진칼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해 조 회장은 경영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한진칼 2대 주주(지분 10.71%)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지난 29일 열린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예고하고 반대 의결권을 모았지만 석 대표 연임을 막지 못했다. 한진칼이 대한항공 지분 29.96%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석 대표의 한진칼 사내이사 연임은 조 회장의 우회적 지배를 뜻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는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IDT’로 이어진다. 금호고속은 박 회장(31.1%)을 비롯한 총수 일가 지분이 57%에 달한다. 금호고속은 금호산업 지분 45.3%를,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각각 갖고 있다. 그룹 전체 경영에서 박 회장을 배제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그룹 지배 구조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박 회장에 지분 사재 출현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조 회장과 박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하지만 실질적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는 만큼 ‘퇴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양대 그룹의 그룹 지배권을 놓고 여러 뒷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민철 기자 minc07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