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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트랜드라이팅] Not Bad의 하루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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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트랜드라이팅] Not Bad의 하루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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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선배 교수님과 광화문에서 술잔을 나누었다. 내 칼럼이 따뜻해서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을 전해준 예전 동료 교수와 셋의 자리였다. 대선배라 조심스러웠지만 유쾌하게 자리를 이끄셨다. 선배님의 목소리는 젊은이들 못지않게 기운이 넘쳤는데 들려준 이야기도 그랬다. 우리 두 사람이 “저희도 젊은 거 맞죠?”라고 물으니 오히려 “어린 거지”라고 너털웃음을 터트리셨다. 백합 안주를 추가했고 소주로 얼큰해질 때쯤 골프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 인생이 그랬네. 뭐가 좀 잘되면 다음엔 뭐가 안 되더라고. 골프가 딱 그렇지. 누구나 공 앞에 서면 네 번의 천당과 네 번의 지옥을 마주하지. 냉탕과 열탕을 오 가는 거지. 그래서 너무 좋아도, 너무 나빠도 문제라네. 그래서 Not Bad가 좋은 거라네. 아시겠는가?” 이어진 두 번의 차수 변경으로 가물해진 내 기억 속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던 지난날이 스쳤다.

다른 회사를 물리치고 일을 따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싸움닭을 닮아갔다. 많이 이기고 많이 졌는데 그때마다 회사 게시판에 이름 올라가는 재미로, 술 마시는 재미로 살았다. 보통의 성과를 보이며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동료들을 얼마간 무시했었다. 선배들의 충고는 들리지 않았고 동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후배들은 관심 밖이었다. 아내와 친구의 마음에 멍울이 생기기 시작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의 시간이 이어졌다. 대한민국광고대상을 받고 얼마 안 되어 부모님 세 분이 세상을 뜨셨다. 큰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많은 연봉을 받고 비서를 부리는 자리를 거쳤지만 조직의 변화는 나의 성과를 어이없이 가로막았다. 직장과 병행하며 얻은 박사 학위는 잠깐 동안의 성취감을 맛본 것이 전부이고 대학은 현장 전문가의 설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며 단맛과 쓴맛을 안겨주었다. 어떤 깨달음이 없었다면 어지럼증에 토악질이 일어 났으리라. Not Bad! 괞찮아. 그만하면 잘 한 거야. 그 날 노교수님의 한마디는 커다란 위로로 남았다.
인생은 사랑과 상실의 연속이라지만 오늘 우리는 또 다시 평범하고 무덤덤한 일상을 맞는다. 봄을 맞고 꽃을 보고 친구와 술잔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한다. 그러나 진정 이것이 소중한 순간이다. 스피노자가 말하길 인생사 기쁨 아니면 슬픔이라고 했지만 그 둘은 서로 친한 친구처럼 엇갈리고 맞물려 찾아오고 떠나간다. 그러니 그 두 길 사이에 한가롭게 펼쳐진 온유한 일상이, 낫배드의 하루가 진짜 행복이다. 누군가 말했다. “산은 정지해 있으되 능선은 흐르고 있고, 강은 흐르고 있으되 바닥은 정지해 있다. 그대가 두 가지를 다 보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산과 강의 진정한 모습을 보았다고는 말하지 말라”. 인생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속단하지 말자. 그리고 평범한 하루를 감사해하자. Not Bad면 충분한 것이다.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