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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축구 결승] 우크라이나 대체 어떤 나라? 대한민국 월드컵 지면 안 되는 7가지 이유 러시아와 같은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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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축구 결승] 우크라이나 대체 어떤 나라? 대한민국 월드컵 지면 안 되는 7가지 이유 러시아와 같은 조상

[U20 축구 결승전] 우크라이나 대체 어떤 나라?  러시아와 같은 조상  한국과 닮은 꼴 7가지   이미지 확대보기
[U20 축구 결승전] 우크라이나 대체 어떤 나라? 러시아와 같은 조상 한국과 닮은 꼴 7가지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가 2019 국제축구연맹 FIFA U-20 월드컵에서 만났다.

한국 우크라이나는 16일 오전 1시 우치 경기장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FIFA 대회 사상 첫 우승에 도전한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대회에 앞서 세 차례 본선에 올라 모두 16강에 오르는데 그쳤다.

우크라이나 역시 폴란드에서 새역사를 쓰면서 사상 첫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페트라코프 감독은 한국은 충분히 결승 진출 격이 있는 팀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에 있는 나라이다.

러시아와 동쪽 국경을,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몰도바, 루마니아와 서쪽 국경을, 벨라루스와 북쪽 국경을 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수도는 키예프이다. 우크라이나 어 발음으로는 키이우로 읽는다.

러시아의 모태 국가인 키예프 대공국(키예프 루시)으로 유명하다.

키예프 공국 전체 영토로 치면 상당히 남쪽에 있다. 그 바탕 민족이 바이킹인와 슬라브인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결국 이 키예프 공국을 공통조상으로 삼고 있다.

예전에는 우크라이나인들 본인들을 우크라이나 루스(Україна русь)로 부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하면 자포로제 카자크와 돈 카자크를 빼놓을수 없는데 이들이 러시아의 기병대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 면적은 남한의 6배 크기이다. 유럽 대륙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나라다.

프랑스가 태평양과 대서양, 남미에 있는 전세계 국외령을 전부 끌어모아 합하면 프랑스 땅이 더 넓지만, 유럽 대륙에 있는 본토만 따지면 설령 크림 반도를 제외해도 우크라이나가 더 넓다.

산지가 별로 없고 토질이 매우 좋아 국토 대부분이 지력이 풍부해 비료가 따로 필요없는 비옥한 흑토인 체르노젬으로 이루어져 옛날부터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세계 최대의 식량수출국이었던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독보적이었고, 2011년에는 곡물 수출량이 세계 3위에 달했을 정도. 이렇게 농사가 잘 되는 땅에서 그 유명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발생했으니 주민들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반러시아 감정 역시 여기에 근거를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이지만 러시아어도 널리 사용된다. 특히 동부와 남부에서 러시아어가 많이 사용된다.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만 사용되는 비율이 높고, 가운데쯤에 있는 수도 키예프와 중부지역은 반반 경계선 느낌이다.

1인당 GDP는 2,052$로 옆나라 몰도바 다음으로 유럽 제2의 빈국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하경제가 빠져있어[9] 실제 1인당 GDP는 이보다는 많은 편이다. 하지만 내전을 겪으면서 화폐가치와 경제가 붕괴하면서[10] 2016년 2월 기준 월평균 급여는 약 165달러로 떨어젔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경제적 잠재력이 충분하다. 비옥한 땅과,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한때 세계 2위 경제력이었던 소련시대를 거치며 많은 고학력 인재들을 보유하였으며, 소련 시대에는 각종 첨단 공업시설이 많이 위치하였고 지금도 안토노프 같은 소련시대의 유산을 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련이 해체될 당시에는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평가되곤 했다. 그러나 정치적 안정의 부재와 막상 독립해 보니 형편 없는 행정력에 비해 지나치게 넒은 땅덩이, 주변국과의 역사, 영토 분쟁 등으로 2019년 현대 까지는 적어도 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 비록 평지풍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탈공산화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 비교적 연착륙하여 빠른 속도로 서유럽과 격차를 좁혀가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소위 비셰그라드 그룹과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크림 반도 최남단 항구도시 얄타에서 얄타회담이 열렸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를 의미하는 말로 на Украине를 주로 쓴다.

우크라이나의 국기는 청색과 황색이 가로로 결합된 이색기이다. 우크라이나 헌법 제 20조에 따라 국기로 규정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흔히 조브토-블라키트니(жовто-блакитний, 황색-청색)이라고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아니다. 황색-청색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국기의 색깔 배열은 위에서부터 청색-황색인데, 실제로 황색-청색 도안도 비공식적으로 쓰였던 역사가 있다.

이 깃발의 역사적 연원은 12세기에 우크라이나에 있던 갈리치아-볼히니아 왕국에서 청색/황색 조합 국기[17]를 쓴 것이다. 현재의 이색기 형태는 리비우에서 1848년 혁명의 영향으로 봉기가 일어났을 때 쓰인 것이 최초이며, 1918년에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생겨나면서 이 이색기 형태를 공식 국기로 채택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멸망하고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일원이 되면서 이 이색기 국기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가 소련 붕괴로 독립하면서 다시 국기로 채택되었다.

국기에 담긴 청색과 황색의 의미에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첫번째는 청색이 물을 상징하고 황색이 불을 상징한다는 것이며, 두번째는 청색이 하늘, 황색이 초원의 다 자란 밀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우크라이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이를 통해 두 번째 설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진 농업과 소련 시절 지어진 대규모 중공업단지나 제철소, 탄광을 가지고 있어 경제가 발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출처 하지만 이웃 슬라브 3국 중에서도 경제발전이 많이 뒤처지는 편이다.[18] 여기에는 여러 정치적 문제가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1991년 독립 이후 다른 소련 국가와 같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 변환을 거치는 과정에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특히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은 1996년 하르보바네츠(карбованець)를 오늘날 쓰이는 흐리브냐(гривня)로 교체했다. 하지만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 등으로 인해 2000년 초반까지 통화 불안정을 겪었다.

사실 우크라이나 경제 문제는 정치 문제로도 자주 연결이 되는데, 농업이 주산업인 서부 지방은 소련 시절 농민들을 탄압해 온 역사(라스쿨라치바니예, 홀로도모르 참고) 때문에 러시아에 반감이 상당히 심한 반면, 공업이 주산업인 동부 지방은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소련 시절 동부 우크라이나 공업지대는 소련 중공업/군수공업의 한 축을 이루었다. 소련 주요 우주발사체 로켓을 설계한 하르트론 설계국, R-36 미사일(NATO명 SS-18 사탄)을 제작한 유즈노예 설계국, An-225로 유명한 안토노프 설계국과 T-64를 제작한 하르코프 공장이 전부 우크라이나에 위치해 있었다. 이 때문에 소련 해체 이후에도 한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양의 기계류를 수입했었다.

동부 지역은 친러적이고, 서부 지역은 반러적인 성향이 강하다. 2010년 대선에서 당선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는 동부의 도네츠크 주에서 무려 90.44%를 득표했으나 서부의 이바노-프란키우시크 주에서는 겨우 7.02%를 득표했다.

위치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서방과 러시아가 이 나라를 놓고 정치적 패권 싸움을 하고 있다. NATO가 발트 지역과 남, 서동부 일대를 에워싼 지금 우크라이나까지 NATO 손에 넘어가면 러시아는 서방의 MD에 삼면의 영토가 노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는 걸 수단방법 안 가리고 막으려 하고 있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이지만 러시아어도 널리 사용된다. 특히 동부와 남부에서 러시아어가 많이 사용된다.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만 사용되는 비율이 높고, 가운데쯤에 있는 수도 키예프와 중부지역은 반반 경계선 느낌이다.

우크라이나의 제적 잠재력이 충분하다. 비옥한 땅과,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한때 세계 2위 경제력이었던 소련시대를 거치며 많은 고학력 인재들을 보유하였으며, 소련 시대에는 각종 첨단 공업시설이 많이 위치하였고 지금도 안토노프 같은 소련시대의 유산을 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련이 해체될 당시에는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평가되곤 했다. 그러나 정치적 안정의 부재와 막상 독립해 보니 형편 없는 행정력에 비해 지나치게 넒은 땅덩이, 주변국과의 역사, 영토 분쟁 등으로 2019년 현대 까지는 적어도 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 비록 평지풍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탈공산화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 비교적 연착륙하여 빠른 속도로 서유럽과 격차를 좁혀가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소위 비셰그라드 그룹과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크림 반도 최남단 항구도시인 얄타에서 그 유명한 얄타회담이 열렸다.


김대호 기자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