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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우리 식음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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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우리 식음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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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경쟁이 치열한 오늘을 사는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에 중독될 때가 있다. 중독은 신체적 중독과 정신적 중독으로 나눌 수 있다. 먹을거리의 관점에서, 신체적 중독에는 독버섯 등에 의한 급성중독과 잔류농약 등에 의한 만성중독이 있고, 정신적 중독에는 알코올중독 등이 있다. 정신적 중독을 특정한 행동중독까지 확대하면 일중독, 도박중독 등이 포함되는데, 이 글에서는 정신적 중독 가운데 일 중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일하는 나를 아내는 일 중독자라고 부른다.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려도 “조금만, 조금만 더!” 기어코 일을 마치고야 밥상에 앉는 나. 그런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낄 때면, 나 스스로도 일 중독자가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일은 삶을 위한 것인데(work to live), 일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live to work), 주객이 전도된 상태가 일 중독이다. 물론 사람은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서는 먹을거리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일에 중독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데,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물론, 가족이나 이웃들도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일 중독이 걱정된다면 성경의 안식일을 떠올려보자. 창조주도 이렛날에 천지창조를 마치고 쉬셨다 하지 않는가?
오래전 이스라엘을 방문했는데, 마침 그날이 안식일이었다. 호텔에 머무는 이스라엘인들은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쉬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엘리베이터 혼자 한 층씩 오르내리며 열렸다 닫혔다 반복했다. 안식일에 사람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매주 쉬는데도 1인당 GDP는 4만 달러가 넘는다.

얼마 전 이탈리아 소도시를 여행했는데, 아직도 점심 후 낮잠 자는 ‘시에스타’를 지키는 곳이었다. 치열한 경쟁의 눈으로 보면 게으른 건데도,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는다. 우리도 논밭에서 일과 쉼을 구별하면서 새참과 막걸리를 즐기지 않는가. 우리의 1인당 GDP도 3만 달러가 넘는다. 이런 관점에서 자문해보자. “우리는 왜 일할까?”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아닐까? 일해서 먹을거리를 얻고, 쉼을 즐기면서, 그 먹을거리를 먹고사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참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우리는 왜 먹는 행위를 ‘식사(食事)’라고 할까? ‘먹을 식에 일 사’라니, 왜 먹는 게 쉼이 아닌 일이란 말인가? 이스라엘인이 안식일에 먹는 행위도 일이 아니고, 이탈리아인이 점심을 먹는 행위도 일이 아니고, 우리가 새참을 먹는 행위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식사(食事)하자’ 즉 ‘먹는 일을 하자’고 말할까?

우리말 가운데 ‘식사’를 대신할 말이 없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식음(食飮), 식음하다’라는 말이 실려 있다. 식음은 ‘먹고 마심’이고, 식음하다는 ‘먹고 마시다’를 뜻한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먹고 마심은 일이 아니라 쉼과 삶을 위한 거룩한 행위 아닌가? 글 읽기를 잠시 멈추고 쉬면서 정리해보자. ‘식사(食事)’ 대신 ‘식음(食飮)’을, ‘식사하다’ 대신 ‘식음하다’를 쓰면 좋지 않겠는가? 우리의 일과 쉼과 삶이 균형을 이루고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