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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완벽한 구성의 안무, 현란한 춤 연기, 융복합의 즐거움…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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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완벽한 구성의 안무, 현란한 춤 연기, 융복합의 즐거움…최성옥 안무, 오토 브루사티 연출의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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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안티고네'
성남문화재단(이사장 은수미, 대표이사 박명숙) 주최로 지난 5월 17일(금)과 18일(토)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공연된 오토 브루사티(오스트리아 연출가) 연출, 최성옥(충남대 무용학과 교수) 안무의 '안티고네'는 방대한 스토리를 응축한 무용극으로써 비극을 써 내는 연극배우 율리아 프록 샤유어의 연기, 감정을 읽어내는 '메타댄스프로젝트' 단원들의 정교한 움직임의 춤, 다양한 음악의 한(限)과 슬픔으로 짠 융복합 공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성남아트센터의 새로운 문화 빛깔 만들기로 부각된 한・오스트리아 공동제작 '안티고네'는 진정성을 견지한 열정적 공연예술의 모범적 전례를 보여주었다. 율리아 플록 샤우어(Julia Prock-Schauer)는 여덟 부분의 글씨 쓰기와 서른 세 개의 핵심적 대사로써 진지한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연출자는 두드러지는 축약의 묘미를, 안무자는 상황과 등장인물의 성격에 부합되는 초(秒)당 안무 구성의 미세 동작을 구사하면서 격조 공연의 품위를 보여주었다.
막을 여는 것은 무용극의 분위기 전개를 암시하는 소프라노 김호정의 노래이다. 노래가 끝난 뒤 관찰자가 되어 객석에 앉는다. 노래가 끝날 무렵 연기자가 등장하여 '내 삶은 기다림의 연속. 죽음을, 처형을, 복수를, 국가와 정당의 싸구려 보복을. 시간이란 무엇인가?'하며 첫 대사를 쏟아내고, 흰옷의 무용수가 사선에서 나와 춤추기 시작한다. '오이디프스. 비극. 저주받고 버려진 아이가..돌아오다..', '저주'와 같은 연기자의 바닥 글씨는 극의 핵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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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안티고네'

스토리 소스, 라이오스(테베의 왕자)는 국내 사정으로 크리시포스라는 왕자를 둔 이웃나라의 왕 펠롭스에게 몸을 의탁한다. 어느 날 라이오스는 미소년 왕자에게 동성애를 범하고 만다. 왕자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여 목매어 자살하고 라이오스는 황급히 테베로 돌아가서 왕이 된다. 외아들을 잃고 슬픔과 고통에 사로잡힌 펠롭스 왕은 라이오스를 향해 "저런 패륜아에겐 패륜을 저지를 자식만이 어울리니 후에 본인 아들 손에 살해당하고 아내를 아들에게 빼앗기게 해주십시오!"라는 끔찍한 저주를 신들에게 기원한다.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은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이다. 안티고네(Antigone)는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고 아내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어머니였음을 알고는 자신의 눈을 찔러 멀게 했다. 안티고네는 여동생과 함께 추방된 아버지의 길잡이가 되어, 그가 죽을 때까지 동행했다. 이 비극에 여러 작곡가들의 음악이 편곡, 사용되며 우울한 분위기 창출에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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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안티고네'

5개의 음악군(群)(평균 13분 정도)이 극의 큰 줄기를 이루는 가운데 춤과 연기가 전개된다.

음악1; 안티고네 탄생배경에 대한 춤이다. '저주'라는 글씨가 쓰여지면서 저주가 시작된 라이오스의 방탕한 시절의 라이오스의 독무에서부터 겁탈(동성애),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결혼(이인무), 오이디푸스 탄생, 버림받음, 양부모의 양육, 살해 정보에 따른 가출(오이디푸스의 독무와 군무진)에 이르는 춤이 이인무와 군무로 확장된다. 무용수들의 독무와 이인무 그리고 군무진이 '전염' '저주' '부어오른 발' '동성애' 묘사에 상황별로 운용된다.
극성 가미를 위해 '안티고네'는 신화에다가 금수저인 대학생 안티고네가 저항의 대가로 목숨을 잃는 야만적인 이야기를 섞는다. 성남 '안티고네'는 인간들의 근원적 죽음에 이르는 고통의 전 과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비틀고, 변주시켜 신비적 황홀을 창출해내는 작업에 관객을 동참시킨다. 신의 존재와 운명을 인지시키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멸을 향해가는 과정의 긴장관계를 분주한 춤이 담당한다. 안티고네의 눈물(우산, 양복, 영상)을 상징하는 디테일이 세밀해질수록 비극의 강도는 세지고, 권력자의 방패로서의 우산도 갈등과 균열을 맞이한다. 점지된 운명은 너무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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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안티고네'

음악2; 춤만 진행되는 장(場)이다. 오이디푸스(노진환)의 독무에 이어 세 갈래 길에서 라이오스(김재민)와 오이디푸스의 결투가 이루어지고, 라이오스의 피살, 스핑크스 수수께끼풀기(김성정),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결혼(노진환, 황지영), 네 자녀 탄생, 이오카스테(황지영)의 자살,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유랑(노진환, 방지선)이 조합을 이루다가 군무진(김성정, 고루피나, 진도운, 김준혁, 김재민)춤에 이른다.

연기자는 의자에 앉은 채, 손발이 묶인 거나 다름없는 상징으로 케이블로 스스로 발을 묶고, 학대당한 존재임을 낭독한다. 무용수가 등장하여 파티가 벌어질 것을 암시한다. 상상적 상황의 연결, 청소년기에 자신과 사회로부터 따돌림 당한 소녀는 잘못된 시점에 저항하고 패거리에 맞서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녀는 책을 바닥에 내던지고, 울분을 토해낸다. 차분하지만 난폭하게 원을 그리며 걷기 시작하다가 묶인 사슬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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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안티고네'

원초적 비극의 비틀기, 죽음을 암시하며 무대 위에서부터 바닥으로 내려 온 붉은 가로선이 안티고네의 외줄타기를 유도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 반복되는 인간의 비극적 역사를 일깨운다. 왕명으로 투옥된 안티고네가 감옥에서 목매어 자살하자 안티고네의 약혼자 하이몬, 하이몬의 어머니이자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리디케, 언니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이스메네의 자살이 이어진다. 빨강・초록 톤의 조명은 안티고네를 만나면서 천도를 의미하는 백색으로 바뀐다.

서사적 이야기에서 현대적 장면으로 전환되면서 무대 위에는 세 개의 테이블과 빨간 천이 그 위에 덮어지고, 무용수들은 빨간 탁자 위에 포도주잔과 술병 등 갖가지 소품들을 갖고 나와 올려놓는다. 이외에도 정해진 운명을 읽어낼 책과 엉킨 케이블, 욕망의 도구인 팬티와 브레지어. 사슬을 끊어낼 총이 사건의 전개를 예감하게 한다.

음악3; 순진한 여대생 안티고네는 난생 처음 상류층 젊은이들의 클럽에 가게 된다.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파티에 미숙한 안티고네는 손가락질을 받지만 개의치 않고. 파티를 즐긴다. 그녀는 기념 셀카를 친구에게 전송한다. 친구는 음란한 배경의 사진들을 다른 친구들 카톡방에 올리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안티고네는 젊은이들의 코카인을 따라해 보다가 겁이 났는지 테이블 밑으로 숨는다. 파티의 친구들은 대마초도 즐기면서 서로 탐닉하고 취해간다.

추한 모습들은 다시 동영상으로 촬영된다. ‘버닝 썬’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들이 일어난다. 안티고네도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토하면서 헤맨다. 자기학대, 폭력, 마약주사, 겁탈, 동성애 등 타락이 일상화된 모습이다. 안티고네가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에테오클레스가 달려와 안티고네의 블라우스와 흰색 브래지어를 찢고 청바지를 벗기고, 팬티를 찢어 던지고 강간하려한다. 안티고네는 저항하다가 바닥의 권총을 발견하고 그를 쏘려하지만 잘 안 된다. 폴리네이크는 제지가 불가능해지자 에테오클레스의 가슴팍에 가위를 드리민다. 피가 솟구친다. 발가벗은 안티고네는 순간 오발로 폴리네이크의 머리를 쏜다. 코카인, 대마초, 주사에 이르는 타락한 사람들의 군무가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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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안티고네'

음악4: 안티고네의 저항과 장례식에 대한 묘사의 장(場)이다. 배우 알몸으로 등장한 배우는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주저앉는다. 무용수 안티고네가 벌거벗고 있는 배우 안티고네에게 옷을 건네준다. 중반 이후부터 비오는 영상과 춤이 동시에 진행된다. 연기자는 통치자 가문의 중요한 두 명이 사라진 사건에 대해 ‘생매장, 사형이 선고되었다’라고 쓰며, ‘자기방어 명분의 살인, 은폐 시도, 시신능욕. 소집된 인민재판에서 형이 선고된다.’라고 책을 꺼내 판사처럼 읽는다. “이데올로기, 휴머니즘, 사회적 청결유지를 위해 국가는 노력해야 하지만 현실은 조작되고, 인민재판은 전 통치자의 딸에게만 죄를 물었다.”

음악5; 무용수 안티고네가 비틀비틀 나오고 무용수들은 빠르게 달려 지나다니고 한명씩 퇴장한다. 무대 세트가 넘어지면서 쓰러진다. 안티고네도 무대 중앙 앞에서 쓰러진다. 죽음으로써 운명에 대해 맞서 보았지만 현실은 이를 외면했다. 마지막 대사 “오, 무덤이여! 신부의 침실이여! 지하의 거처여, 기다려라! 내가 거기 내 가족에게 가리니. 가족 대부분이 죽어서 분노와 연민을 품은 채 도달한 곳”이 읊조려진다. 연출자는 현실은 도전을 기다림을 알린다.

'안티고네'에서 제시되는 운명의식은 전율이다. 제물로 바쳐진 듯한 안티고네 뒤로 반쯤 열려 넘어진 병풍 같은 무대 세트, 그 뿌리는 박혀있는 부채 살 모양이다. 붉은 천이 덮인 긴 테이블은 관을 암시한다. 거대한 붉은 천은 생사(生死)를 가르는 갈림길을 뜻하며 클라이맥스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안무가와 연출가는 동서양을 아우르며 신화와 현실에서 나타나는 인간들의 욕망과 오만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열린 결말을 제시하며 무용극은 종료된다.

기해년의 '안티고네'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가? 어지러운, 아슬아슬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신화적 교훈에서 현실적 사건까지 연관된 인간 군상들의 행태를 고도의 진지성을 견지하며 철학적 상부구조로 이끌어가는 예술가들의 의기투합은 바람직한 예술창작의 모습이다. 창작자나 관객이나 평자도 모두 숨 가빴던 공연은 담론을 창출하기에 충분하였다. 관객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진전하는 창작 태도나 작품을 수용하는 주변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