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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여름 연못의 귀염둥이, 왜개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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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여름 연못의 귀염둥이, 왜개연꽃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비가 잦은 요즘이다. 태양을 능멸하듯 당당하게 담장을 타고 오르던 능소화가 비에 젖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것을 보면 중국 명나라 때 문명이 높았던 원굉도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꽃을 보는 데에도 어울리는 때와 장소가 있다고 했다. 만약 이를 가리지 않고 꽃을 보면 신기가 흩어져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고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날씨와 장소를 가려가며 꽃을 보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여름 꽃은 비 온 뒤에 선들바람 불어올 때 좋은 나무그늘 아래나 대나무 그늘, 물가의 누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제격’이란 말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름이면 연꽃방죽을 즐겨 찾는다. 비 오는 날 연잎에 듣는 빗소리도 좋고, 비 그친 뒤 정자에 앉아 물방울이 맺힌 연꽃을 보는 재미가 여간 근사한 게 아니다. 연지에는 연꽃 외에도 다양한 식물들이 꽃을 피운다. 연꽃 구경을 갔다가 수련이나 노랑어리연, 부레옥잠을 만나는 것은 덤으로 얻는 소소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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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연못의 귀염둥이, 왜개연꽃

연지를 장식하는 수많은 조연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꽃이 왜개연이다. 왜개연은 보통 연꽃이나 수련에 비해서 꽃이 훨씬 작고 아담하다. 꽃색도 노랑 단색으로 연꽃처럼 화려하지 않고 이름도 촌스럽다. 잎은 연꽃처럼 물 위로 많이 올라오는데 꽃은 수련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보통 꽃 이름에 ‘개’자가 붙는 것은 기본종보다 열등하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왜개연이 연꽃보다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아서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이 왜개연이다.

왜개연은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연못이나 늪에서 자란다. 꽃은 한여름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물 위로 올라온 튼튼하고 긴 꽃자루에 한 송이씩 핀다. 기껏해야 지름이 2.5㎝ 밖에 안 되는 작은 꽃에 비해 꽃대가 굵고 튼실해 보인다. 꽃을 둘러싼 꽃잎처럼 보이는 노란색 다섯 장은 진짜 꽃잎이 아니다. 효과적인 꽃가루받이를 위해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꽃받침이 꽃잎 모양으로 변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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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연못의 귀염둥이, 왜개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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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받침 5장이 안쪽의 암술과 수술을 살포시 감싸서 보호하고 있다. 그 안쪽에 황색의 작은 주걱 모양의 구조물이 보이는데 그것이 진짜 꽃잎이다. 그리고 황색의 주걱형 꽃잎 안쪽에 암술머리를 향해 안쪽으로 굽어 있는 것이 수술인데, 자세히 보면 꽃가루가 잔뜩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술이 암술머리를 향해 돌아가면서 나 있고, 중심부에 노란 색의 암술머리가 있다. 왜개연꽃의 암술머리는 노란색인데 반해 남개연꽃의 암술머리는 붉은 색이라 암술머리를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왜개연꽃과 남개연꽃은 모두 잎이 물 위에 떠 있는 반면, 개연꽃은 잎이 물 위로 올라오는 게 특징이다. 꽃에 비해 꽃대가 튼실해 보이는 왜개연은 수직으로 곧게 우뚝 서서 꽃을 피우고 수정을 마치고 열매가 맺히면 꽃대가 옆으로 비스듬히 눕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면 물속으로 들어가서 실하게 영근 종자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떨어진 씨앗들은 또 다른 개체로 성장하여 여름 연못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어여쁜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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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연못의 귀염둥이, 왜개연꽃
장마가 지는 여름이 되면 녹음도 한껏 짙어져 사방이 초록 일색이라 무슨 꽃이 있을까 싶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게 꽃이다. 자주 비가 내려 마음까지 젖기 쉬운 요즘, 마음이 울적하다면 가까운 연꽃방죽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시원한 나무 그늘이나 정자에 올라 연잎의 군무를 즐겨도 좋고, 무료하다면 연못에 노랑 꽃등을 켜고 있는 왜개연의 노랑 아름다움을 탐해보는 것도 좋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당당히 꽃을 피운 노랑 왜개연을 보며 꽃빛에 눈을 씻고, 꽃향기에 마음을 헹구면 여름이 뜨거운 까닭을 알게 될 지도 모르니까.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